내가 참 사랑을 느끼고 알게된 것은 강남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이다. 지금은 내 곁에 없지만 사랑을 알게한 것은 죽은 내 아들을 매체로 해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고 오묘한 것인가를 알게됐다.
1983년 12월 10일 죽은 모세가 영세한 날이다. 12월 17일,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병원 영안실로 옮겨진 날이며 내가 중환자 실에서 산소 호흡기로 꺼져가는 불을 살려내듯 생명을 회생시키려고 의사선생님들이 애쓰며 땀 흘리던 날이기도 하다.
일주일이 지나 12월 23일, 모세가 팔당천주교 묘지에 학교친우들과 성당 학생회 교우들의 손에 의해서 묻히던 날이다. 아무것도 없는 내 빈손이 모세의 묘지를 살 돈이 있을지 만무했으며 장의차와 모세의 친우들과 성당 학생회 교우들, 여러 이웃을 대접할 음료수와 빵을 마련할 바구니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왼팔을 절단하고 수술실에서 나온 이날 회복실에서 의식을 되찾고 얼마후 병실에 누워있을 때 모세와 가까이 지내던 본당의 학생들이 찾아왔다. 본당 사무장님과 학생회 선생님들의 주선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 나는 뜨거운 그 무엇을 느끼기 시작했다.
없어, 마음 아파하는 이들의 가슴을 사랑이라는 붕대로 감싸고 꿰매주는 것이 이런 것이며 태산 같은 빙산도 녹일 수 있는 부드러움이 어떤 것인가도 알게 되었다. 겨울방학이라서 시간이 많다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내 만류도 마다하고 과일바구니를 사들고 그 학생들은 자주 내 병실을 찾았다. 내 침대 옆에서 모세대신에 아들 노릇을 해드리겠다며 침대 옆에서 위로의 말을 해주던 그 본당학생들에게서 나 자신 눈물 흐르는 것을 모르며 손을 꼭 쥐곤 하였다. 훈훈하게 스며오는 이 따스함이 사랑의 기쁨이었을까? 3개월이라는 긴 병실 생활에서 과일이나 음료수를 사들고 낯선 환자들의 침대를 찾아 다니며 위로와 하늘의 복음을 알려줄 때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았으며, 정형외과는 뼈와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는 병실이므로 고통의 신음과 신경질적인 환자들의 소리에도 낮 찡그리는 일 없이 따뜻한 웃음과 손길로 환자들을 대하는 간호원들을 볼 때 나의 눈은 사랑이 무엇인가를 깊이 깊이 알게됐다. 내 옆 침대에는 전신마비의 환자가 있었는데 식사와 대소변을 보조 간호원들이 맡아 하고 있었다. 실습기간이 끝나 보조 간호원들이 돌아간 후 나는 불편한 몸이지만 그 일을 내가 대신 해 보았으면 하는 나누어 주는 사랑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간호원들이 순번으로 돌보고 있지만 옆에서 잔 심부름을 해주기 시작하던 내가, 그것을 떠맡을 용기를 얻었다. 식사는 물론 첫날 대소변을 받아 치우면서 나는 나누어주는 사랑에 취하여 악취와 고통스러움을 모르며 지나갔다. 절단된 왼팔의 아픔으로 밤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때가 많았지만 아침 식사가 끝나면서 옆의 환자 주위를 맴도는 생활로 나는 사랑의 즐거움을 가졌다.
나는 이제까지 사랑을 받아만 왔던 생활이었으며 줘본 사랑이라곤 손끝만치도 생각이 안났다. 병실 생활중에 꼬린토전서 13장을 읽으며 사랑의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으며 나이 주위와 내 이웃을 둘러볼 시간도 가져보게 되었다. 3개월 병원생활을 청산하고 환의를 벗을 때 나의 깨끗한 수술 상처를 만져주는 의사 선생님의 얼굴에서 나는 사랑의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내 건강을 걱정해주던 본당학생들이 나의 퇴원을 웃음으로 맞이햇을 때 나는 사랑의 기쁨을 니꼈다. 그후부터 나는 많은 순간에서 사랑의 기쁨을 느꼈다.
만원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의 손을 이끌고 먼저 타시게 하려고 애쓰는 청년을 봉았을 때, 나는 사랑의 기쁨을 느낀다.
시장 바닥에서 하체불구의 젊은이가 카세트를 틀어가며 생활용품을 실은 손수레를 밀고 다닐 때 때밀이 수건과 수세미 몇개를 사는 아주머니의 손길에서, 골목길에 자동차의 경적이 울린 것을 모르고 재미있게 노는 어린 아이를 덮석 안아 일으키는 할아버지를 볼 때 나는 사랑의 기쁨을 느낀다.
또 이 추운 겨울날 한 손에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은 허리춤에 움켜 넣고 교회마당을 들어서는 할머니에게 우리 본당의 수녀님이 종을 치러 나오다 『날씨가 몹시 춥지요?』하는 목소리에서 나는 사랑의 기쁨을 느낀다.
이 눈 내리는 날, 바람 한점 없이 소복 소복 쌓이는 눈을 볼 때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한다.
김창남(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봉상2리 157 희망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