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쌓이는 카드 속에서
카드가 홍수다. 사무실의 내 책상에만 하더라도 어떤 날은 하루에 수십통의 성탄 · 연하카드가 쌓인다.
정신차릴 새 없이 돌아가는 연말무렵에, 몸이 바쁘고 고달프기로 말하면 그 카드들을 일일이 열어본다는 일은 쉬운 일이 못된다. 어구나 그 카드들의 대부분은 비서가 대신 봉투를 쓴 「높으신 분」의 것이거나 이름가지를 아예 인쇄해버린 무성의하고 무례한 것이기 때문에, 불쾌감만 얻게되는 경우가 흔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카드들을 열어보지 않고 내버릴 재간은 없다. 그중에는 참으로 소중한 축하와 우정 그리고 추억까지가 함께 담긴 카드가 진주처럼 박혀있기 때문이다. ○형의 카드는 바로 그런 것 가운데 하나였다.
그 카드에는 아주 단순한 인사말과 서명이 만년필로 적혀 있다. 인사말 자체는 별다른 뜻이 없다. 나는 다만 그 인사말을 읽으면서 그의 육성을 귓전에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그의 표정을 눈앞에 다시 그리게 된 것이다.
○형은교회 일을 통해서 만난 사람이다. 교회에서 받은 어떤 짧은 교육의 동기생이라는 인연으로 몇차례 피정에 함께 참여한 일이 있었고 최근의 만남 역시 그 피정 모임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그의 카드를 보면서 떠올린 그의 육성은 이런 것이다. 그는 그때 곁에 앉은 젊은 사제 한 분과 대화중이었다.
『신부님, 특별미사 봉헌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연미사라고 해야 할런지…. 저희 부부가 젊었을 때 철모르고 죽인 자식을 위해서…』
그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했고 눈에는 눈물마저 반짝이는 듯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작지않은 충격이었다. 웬만한 세상 일은 하루 이틀 뒤에 싹 잊어버리는 습성을 키워온 나였지만, 그때의 그의 육성과 그의 표정은 몇달이 지나도 잊어지기는 커녕 자꾸만 크고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 서울에도 AIDS
몇해전 「샌프란치스코」에 갔다가 「게이」들의 실태에 놀란 일이 있다. 미국 제일의 명문대학이라고 하는 대학의 교정에서는 동성연애자들의 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성직자의 강연회 포스터가 크게 나부꼈다. 그 교정에서 만난 유학생 한 사람은 『게이들이 설치는 사회에선 게이 아닌 사람이 「비정상」 취급을 당한다. 이 사회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AIDS 공포」가 실감됙 시작한 것은 내가 그곳에 갔던 때로부터 한해가 지나면서부터의 일이다. 지난해는 특히 미남배우 록 허드슨의 죽음이 공포의 파장을 더욱 넓게 터뜨렸다. 「현대의 天刑」이라는 표현이 걸맞는 AIDS는 동성애자에게서 많이 발생한다는 개연성만이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AIDS가 『우리나라라고 성역일 수 없다』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이 중동에서 본국으로 후송돼 왔는데, 그의 서울에서의 행적을 살핀 결과 「이태원 출입」이 잦았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등의 신문보도가 그것이다.
「이태원 출입」이란 이태원에 산재해 있다는 「게이 바」에 드나들었다는 뜻이다. 이태원은 소문난 서울의 기지촌 지역이다.
이태원은 한자로 梨泰院이지만 원래는 異胎院이었다는 이야기가 공교롭다. 임진왜란 7년동안에 왜인들에게 짓밟힌 여성들이 뜻하지 않은 임신끝에 낳은 아이들이 한데 모아 기르던 곳이 異胎院이다. 그런 곳이 오늘날에도 기지촌이 되고, 다시 저들의 풍속대로 「게이」의 온상이 되고, 그로써 AIDS 공포를 낳는 장소가 되었음은 우연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도대체 AIDS 자체가 우연히 생겨난 惡疫이 아닐터이지만!
■ 술자리의 건배 풍속
요즘 술자리에 가면 묘한 「건배」 풍속이 유행이다. 자리를 마련한 사람이 죽잔울 높이 들고 좌중을 향해 건배를 제의하는데, 큰 소리로 『개나발!』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일제히 『개나발!』하고 응답한다.
또한번 술잔을 채운다음 이번에도 또 『위하여』를 제의하는데, 그말이 「세평조통!』이다. 이 때 좌중의 한 사람이 이이를 제기하는 수도 있다.
『세평조통은 너무 거창하니 「가평조통!」정도로 합시다』
이미 술에 거나하게 취한 신사들은 술잔을 높이 들어 『가평조통!』을 합창한다.
이게 모두 무슨 잠꼬대냐고, 어렵게 생각할 일이 못된다. 「개나발」은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의, 「세평조통」은 『세계평화와 조국통일을 위하여』의 준말인 것이다.
그렇다면 「가평조통」은 너무나 자명해진다. 『가정의 평화와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가 정답이다. 주지육림이라고나 해야할 술자리에서 『가정의 평화』를 입에 올리는 것이 무엇의 무엇을 위한 보상심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뭏든 『가정의 평화』라는 그 말만은 너무나 아름다운 명제가 아닐 수 없다.
새해가 밝았다.
물신(物神)의 거대한 힘이 전통적인 가정상을 파괴하고 오도된 과학과 인구정책이 살인마저 합법화 하고 있는 『가정과 가족이 위기』의 때에 「성체와 가정」을 새해의 「주제」로 묵상하게 된 것은 우선적으로 개인과 가정에도 뜻이 깊다.
다시한번 ○형의 육성이 귓전을 울리고 있다.
정달영(프란치스꼬 · 한국일보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