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다 지니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상가와 사무실, 그리고 사람들의 발걸음들이 조금씩 바빠지고 있다. 매년 그러했듯이 올해에도 역시 연초에 세웠던 아름답고 희망찬 계획과 꿈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새로이 맞이하는 새해는 또 무슨 계획을 어떻게 세워볼까 하는 마음이 함께한다. 연초에 세웠던 여러 계획들을 연말인 지금 생각하면 실천에 옮겨진 것이 너무 적은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짐을 감출 수가 없다.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너무 거창하고 화려한 계획을 세운 탓이 아닐까? 이러한 반성을 하면서도 역시 계획은 좀 큼직하고 무게있게 세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분석은 지만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결과를 놓고 반성과 분석을 통해 후회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이 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새해는 병인년(丙寅年), 호랑이해이다. 또 호랑이는 몇년 후에 우리가 치루어야 할 서울 올림픽의 상징물이 되었다. 심산유곡을 누비고 다니던 근엄한 모습이 우리의 전설속에서는 해학까지 지니고 있다. 또 어린시절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듣던 호랑이는 의리 있고 은혜를 보답할 줄 아는 동물인 것이다.
옛날 깊은 산골에 노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었다. 하루는 밤중에 어머니가 위급하여 읍내(邑內)로 약을 구하러 나섰다. 고개를 넘을 때였다. 커다란 호랑이가 나타나서 입을 벌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젊은이의 발은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병석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리고 젊은이는 기절하고 만 것이다. 얼마쯤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호랑이는 아직도 입을 벌리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젊은이는 죽은 몸이라 생각하고 다가가서 보니 입안에 뼈가 걸려 있었다. 젊은이는 팔을 걷어 올리고 빼내 주었다. 그랬더니 호랑이는 등에 타라는 시늉을 했다. 이상히 여기면서 올라탔더니 읍내까지 태워다 주었다. 약을 지어 돌아올 때에도 젊은이는 호랑이를 타고 왔다.
그리고 호랑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노모는 그 약을 먹고 건강을 되찾아 오래오래 살았다고 한다.
이 옛날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호랑이해에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로 한다. 동물인 호랑이도 이런 의리(?)와 도움받음에 대한 반응이 있는데 사람들은 얼마나 의리와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하며 사는지? 나도 많은 분들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그에 대한 고마움과 보답을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짐을 감출 수 없다.
특히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온갖 은혜에 나는 얼마나 어떻게 무엇으로 보답하는지? 그리고 그 고마움을 알고 살아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옛날 속담에 『자기 마음만 좋으면 남산호랑이도 사귈 수 있다』 이 한마디의 속담 안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특히 인정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현실에.
새해는 크고 화려한 계획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일상생활 안에서 의리를 지키는 것과 작은 도움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는 계획을 제일 먼저 세우기로 한다.
김병조(에드몬스 · 修士 · 성베네딕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