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산제(産制) 문제의 연구를 위하여 고 요한 23세께서 평신자 및 성직자들로 구성된 자문소위원회를 창설한 이래 교회내는 물론 세계의 이목과 관심은 이세계적이요 세기적인 문제에 집중되었고 성하(聖下)의 명확하고도 확고한 교도적(敎道的) 단안을 기다린지 오래다. 그로부터 6년 오랜 연구와 자문과 진통과 고민 그리고 많은 기도가 성신에게 바쳐진 끝에 지난 7월 29일 바오로 6세의 「인간생명에 관한 회칙」으로 그 결론이 발표된 것이다. 이 회칙은 산아조절을 금한 것이 아니고 조절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며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자연법에 위배되는 수단으로 인간생명을 단절시킬 수 없으며 물리적 또는 화학적 방법으로 수태를 막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이러한 행위를 단죄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칙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교회가 견지해오던 산제문제에 관한 태도를 재확인한 것이며 재천명 한데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 특히 부부생활에는 전주님이 정하신법에 따라 부부애를 지킨다는 종전의 생활에서 하등의 변함이 없을 것이며 아무리 고난스럽고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자모이신 교회가 가르치는 길, 아버지다운 예견으로 타이르는 회칙을 준수할 뿐이다.
회칙이 발표된 즉시로 전세계의 반영은 찬성의 소리보다는 소란한 반대와 실망으로 표현되었고 교회 내부에서도 일부지역에서는 반대의 잡음이 없지 않다. 역대 교황이나 혹은 현교황의 수많은 회칙발표에 있어 교회내외에 이처럼 큰 물의를 일으킨 것도 처음이요 특히 교회 내에서 사목에 관한 각가지 이유로 실망과 불만의 소리가 나와 물의를 일으킨 것도 처음이다.
이처럼 산제문제는 세계의 당면한 관심사요 인류존망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교황께서도 6년이란 긴 세월을 두고 연구를 거듭했고 전문위원회를 강화 증설했고 주교회의의 중진들과도 많은 검토를 했으며 전문가들과 심지어 가정주부들의 의견까지도 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앞으로 있을 반대와 불만을 십분 알면서도 그리고 예견치 않던 난관들이 닥쳐오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는 가운데서 교황은 「천주의 질서」와 혼인의 근본정신을 지켜야 할 자기의 임무를 용감하게 선언하신 것이다. 그만큼 교황의 고민도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교황은 자신에 가득하고 기연한 태도와 평안한 심경가운데서도 금번만큼 자기의 책임이 무거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알현군중에게 술회하고 있는 것이다. 회칙은 결코 일시적인 속단이나 「옹고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신의 도우심과 교황의 교도적 예지를 신뢰하고 오로지 회칙을 준수할 뿐이다. 회칙이 가르치는 대로를 준수하지 않고 과거의 병든 생활을 고집·계속한다면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우리의 구령은 물론, 세계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모든 회칙은 환영하고, 금번 회칙만은 환영할 수 없다면 우리는 내 구미에 맞는 대로 교황의 교도권을 때로는 인정하고, 때로는 거부하는 결과밖엔 되지 않는다. 교황의 교도권은 언제나 불변이다.
금번 회칙을 반대하는 소리들과 앞으로 닥쳐올 고난의 길을 염려하는 의견들을 간추려보면 크게 나누어 대충 두가지점에 귀일하는 것 같다. 그 하나는 사목에 관한 앞으로의 염려요, 그 둘째는 세계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에 따르는 후진국의 식량과 교육문제를 들고 있다.
인공적인 산아제한을 계속하는 신자들의 신앙유지가 어렵겠다고 한다. 교회는 산아를 조절하면서 부부간의 정당한 성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길을 허용하고 있다. 많은 신자들이 이 허용된 산제방법을 모르거나 혹은 알아도 그 방법의 사용에는 게으른 것 같다. 교회는 좀 더 적극적이며 대담하게 부인들의 생리적 주기를 이용한 조절법을 지도하고 계몽해야 한다.
성생활은 본래가 성적 만족과자 자여생산의 기능이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요, 또 분리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동시적이요 양자는 하나로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 여성이라는 하느님이 인간에 부여한 특전을 악용하여 분리하는 일은 혼인의 근본정신을 모독하는 결과가 되며 부부관계의 정점이 사랑이라는 것을 잊고 스스로가 가정생활을 파괴하는 결과마저 초래하게 되리라. 회칙은 애정으로 맺어진 가정을 지키며 보호하는데 큰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부생활은 성생활이 전부가 아니다. 성생활은 그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성적 향락만으로 맺어진 부부는 쉽게 파괴되는 법이다. 사목적인 반대는 이밖에도 교회 일치운동의 정체, 교회내의 보수·진보의 알력 등을 들고 있으나 이런 것들은 혼인의 근본정신을 지키는 대파업과 그 사명을 생각하면 지엽말단의 문제다. 회칙 준수에는 물론 많은 날이 있음을 우리는 시인한다. 전쟁에는 많은 인명이 손상되는 법이다. 전쟁을 하면 많은 사람이 죽는 줄 알면서 우리는 정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죽음의 길에 용감하게 나가지 않는가. 진리를 지키는데 희생이 없을 수 없다. 가정을 지키는데 우리는 희생을 바쳐야 한다.
둘째 후진국의 인구문제에 많은 염려를 선진국에서 들고 있다. 식량문제해결을 소극적인 산아제한으로 막을 수는 없다. 식량부족 이전에 사랑의 결핍을 역대교황은 회칙으로 호소했음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지상의 평화」를 위시해서 교회는 후진국에 대하여 언제나 적극적이요 과감했음을 상기하고 식량부족은 사랑에 충만한 분배와 적극적인 과학의 힘에 기대해야 한다. 후진국을 한제의 이유로 들지마는 피임약 사용의 통계는 가장 사회보장이 잘되어 국민소득이 높다는 스웨덴이 19%로 1위 그다음 미국·서독·스위스·영국·프랑스로 나타나있다고 한다. 경제문제만을 들어 회칙을 반대하는 것은 부자연한 부부생활이 현사회의 모든 악의 근원임을 망각한 소치라고 하겠다. 우리는 용감하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회칙을 준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