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찬비가 내린다. 가랑잎이 아득한 허공에서 어디로 떨어질까 몸을 떨고 있더니 오늘은 땅위 어느 기슭에서 찬비를 맞고 있으리라. 우연히 그의 영세식에 입회하게 되었던 無期囚로부터 오랫만에 편지가 왔다. 이제 감방은 몸이 시리도록 냉기가 돌고 지난 봄 영세때의 믿음과 부푼 희망에도 불구하고 찬 날씨와 더불어 쇄잔한 마음이 아득한 연민 앞에 떨고 있노란 사연이었다. 그뿐인가. 그곳엔 20년 영어중에 한번도 면회를 오지 않는 동료도 있다고 호소해 왔다. ▲옥에 갇힌 자의 고독과 추위 분이랴. 오라잖아 겨울저녁, 헐벗은 가로수 아래 굼방장수의 따뜻한 풍로가 빨갛게 피면 적선을 바라는 생명들이 차가운 도회의 석벽에 의지하여 긴긴 겨울의 남루한 파수꾼이 된다. ▲세상엔 아직도 구석구석이, 도회에도 농촌에도, 심령으로 物的으로, 가난하고 불행한 자가 얼마든지 웅크리고 있다. 그런반면 세상엔 또한 불행같은 것엔 아예 가까이 가지도 말라는 듯 마치 추운 겨울날 따뜻한 자기집을 향해 종종걸음 처가듯 길가의 불행한 눈감고 귀먹고 입다물고 사는 사람도 슷하다. ▲그뿐이랴. 그들은 불행을 것 더 보기도 싫어할뿐 아니라 불행과 불행한 사람까지도 불쾌한 것으로 경멸한다. 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왜 범죄하는가. 왜 불구인가. 왜 추악한 꼴로서 남이 행복 조차 훼방하는가고 생각할지 모른다. 마치 그들 불행한 자의 처지가 전적으로 그들 자신에게만 달려있고 또 자신들의 부유한 처지가 전적으로 자기공로인 것 처럼. 또 그 어떤 운명을 당연한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 다울 때 결코 이 세상에선 끝내 행복할 수가 없다. 『세상에서 진정 행복한 자가 잇거던 내게 가리키라. 나는 그 인간에게 자기 중심주의, 이기주의 또는 간악 아니면 완전한 무지가 있을 따름』이라고 그레함 그린은 말했다. ▲극단적으로 이 세상의 중생 하나라도 불행중에 남아 있을 때 십자가를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그리스도 정신이다. 그리스도자를 누가 인간적 책임을 해피하고 신에 의지하여 安心立命한 자라고 했는가? 진정한 신자는 이세상에서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이웃을 위해 고통스러운 보속을 면치 못하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