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달은 연령성월이다. 지난 초이튿날 우리가 치룬 「추사이망」(追思已亡) 축일을 계끼로 이달 한달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기구하는 달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령성월은 그 이름과 구호(口號)에 비하여 일반적으로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으며 앞서 말한 추사이망 축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한달내내 별다른 싱공이나 행사도 없이 지내는 것 같다.
가령 5월달은 성모성월이다. 이 한달동안 우리가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와 특히 성모이 밤 행사는 얼마나 여러차례였으며 고요한 신공의 밤이 마치 「데모」나 하는 것처럼 소란을 피우기에 까지 이르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연령성월은 문자 그대로 적적하다. 연옥영혼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가련한 영혼들이다. 오직 바랄 것은 지상에 있는 우리의 기도와 희생뿐이다. 그들은, 지옥영혼들은 「무기형」 연옥영혼들은 「유기형」이라는 차이밖에 없는 오직 그 기한만을 기다리는 버림받은 고독한 영혼들이다. 연옥 영혼들은 지상에 살아있는 우리들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만이 속죄의 보속을 할 수 있으며 우리만이 그 희생을 전구(傳求)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은 또 죽음을 묵상하는 달이기도 하다. 현대인은 죽음을 두려워할 줄은 알아도 죽음을 관상할 줄은 모른다. 죽음 속에 살면서도 죽음은 생각지 않는 것이 현대인이다. 묘지참배는 추사이망 하루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년을 통하여 자주 묘지를 찾아야 하겠다. 특히 11월달은 계절적으로도 죽음을 묵상하기에 더욱 알맞는 시기다. 소란한 생활에서 하루만이라도 혹은 몇시간만이라도 좋다. 교우공동묘지나 조상의 산소를 찾아 개인 묵상으로 보내는 시간을 가지라.
묵상은 반드시 죽음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처주님과 대화하며 자기영혼을 발가숭이로 해서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묵상의 최적지가 교우공동묘지다. 묵상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피정의 집을 찾아야만 할 이유도 없다. 특히 지도신부의 지도와 피정관리 아래 하느 ㄴ묵상회가 아닐 때는 혼자 이런 시간을 만드는 것이 좋다.
교우 공동묘지를 찾아 혼자 적막산천 공기 속에 고요만이 살고 있는 그 넓음 속에 앉아 있으면 스스로 내 영혼의 갈 길과 가야 할 길이 거울알처럼 맑게 보여지리라. 지금까지 교우공동묘지를 찾지 않은 것도 아니나, 소위 묘지참배를 하는 교우들 중에는 은사를 얻어 입기 위해서 혹은 막연한 감상에 젖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구태여 묘지까지 가지 않더라도 성당 참배로도 은사를 얻어 입을 수 있고 시정잡답(市井雜踏) 속에서도 울음은 한없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교우공동묘지의 시설과 관리에 좀더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묘지는 죽은 시신을 버리는 곳이 아니다. 모시는 곳이다. 불결한 곳이 아니라, 정결한 고싱요, 음산한 곳이 아니라 발곡 장엄한 곳이 바로 교우공동묘지라 하겠다. 여기에는 물로 씻고 성우로 축성한 사람들의 육신이 창조의 그날 그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곳이다. 부활을 기다리는 고성소와도 같은 곳이다. 천당에 있는 영혼들이 부활이 영광이 올 그날을 기다려 자기의 평생 반려(伴侶)인 육체에도 천주님이 마련하신 영원한 영광, 무한한 복락을 같이 누리게 할 인간의 또 한 부분이 누워 있는 곳이다. 천상의 영혼들은 잠시도 있지 않고 그 짝을 생각할 진데 어찌 우리는 그 성지(聖地)를 천대하느냐. 참으로 교우공동묘지를 묵상의 성지로, 부활의 거룩한 광장으로 가꾸고 다듬어야 하겠다.
근래에는 본당마다 따로 교우공동묘지를 마련하는 경향이다. 도시에서는 그 도시내에 있는 여러 본당이 공동으로 묘지를 마련하는 수가 많다. 원칙을 정하고 질서정연하게 잘 정돈된 곳도 있으나 그 중에는 무질서, 무원칙 관리 소홀, 도로의 미정비 등 임자없는 무연분묘 같은 교우공동묘지도 없지 않다. 11월 죽음을 묵상하는 이달에 다시 한번 이 망각지대를 정비하고 손질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본당에 따라서는 초상계를 조직하여 대세자의 초상, 특히 가난한 초상을 도와 교우공동묘지에 지성껏 장례를 치뤄준다.
이 묘지에 돠 본 외인조객들의 감명은 참으로 크다. 이런 애덕의 실천은 과거 많은 영혼들을 구하고 많은 사람과 그 가정을 교회로 불러 들였다. 인간은 불행할 때 특히 죽음의 주변에서 받는 친절이 그 마음을 감동케 하고 진리의 타이름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법니다. 이런 미풍은 지금도 필요하고 이 방면에도 우리는 계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묘지관리인의 역할은 이 묘지설치의 본래의 취지와 관련하여 참으로 중요하다. 관리인의 생활대책에 대하여 본당은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토지 몇두락을 사주어 그것으로 생개를 유지케 하고 이것으로 방임해 두는 수가 많다. 이 관리인은 생활을 위하여 자연 상주(喪主)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게 되고 시신을 앞에 두고 온갖 불쾌한 언쟁이 오가게 하는 수도 있다.
묘지의 관리와 매장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천주를 위하여』, 『신공으로』라는 말로 일만을 강요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이달에는 이런 사람들을 위하려도 위안이 있는 일이 실천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11월은 월동준비 등으로 일년중 가장 할 일이 많은 달이다 이런 일들 가운데 특히 연령을 위한 기도와 죽음에 대한 묵상과 묘지이 관리 등의 일들도 잊지 않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