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이니까 꼭 10년전이다. 내가 예술원상을 탔을때 수상기념으로 어느 출판사에서 합죽선(合竹扇) 하나를 보내 주었다. 마디(節)도 여섯이나 되었지만 규모도 큰 편이었다.
나는 본래 더위를 몹시 타는 편이지만 부채로써 이것을 해결하리라고는 생각한 적도 없었고 더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거치장스럽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부채를 구경한 사람들이 모두 상당히 좋은 부채라고 칭찬들을 하고, 나도 어차피 빈손으로 다니기보다는 나을것 같아서 외출할 때마다 「의관」의 한 부분으로 들고 다녔다.
그렇게 한달포나 지났을까, 나는 그것을 어느 다방에 놓아버렸는지 어느 술자리에서 잃어버렸는지 없어지고 말았다.
그뒤 광주에 가서, 아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합죽선 두개를 구했다. 하나는 기름을 먹인 것이고 하나는 그림도 기름도 올리지 않은 샛하얀 소선(素扇)이었다. 이 두개중 소선은 소전이나 제당같은 大家에게 멋진 글씨와 그림을 받아서 기름도 올리고 할려고 아껴두고, 기름올린 놈을 들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어느 친구집에<섰다>(화투)를 놀러갔다가 잊어버리고 왔다.
그뒤 한 달포만에 찾아오긴 했는데 기름 냄새가 좋았던지 부채 끝으머리를 쥐가 갉아 먹었다.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깝고 또 새것을 가진대야 어차피 또 어디다 놓고 올테니까 이왕이면 쥐가 갉아먹은 놈을 그대로 들고 다니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쥐 갉아먹은 함죽선은 좀체 잃어지지 않았다. 그럭저럭 3년 동안이나(여름이면) 쥐 갉아먹은 합죽선을 들고 다니다가 이것도 어느 자동차 속엔가 술자리엔가 두고 잊어버린 것 같다.
요즘은 하는 수 없이 마지막 비장(秘藏)의 소선을 들고 다닌다. 이것도 마디는 여섯개짜리다. 여섯마디 합족선인데 펼치면 그림도 글자도 없는 기름도 올리지 않은 샛하얀 바닥이다. 젊을때 같으면 무슨 초속적(超俗的)인 푸라이드를 뽑낸다고도 보겠지만 지금 나에게 그런 따위 오기가 있을리 없다. 게을러서 그냥 소선을 들고 다닐 뿐이다.
생각하면 도대체 내가 부채를 꼭 들고 다닐 까닭은 무엇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가나오나 선풍기요 「에어컨」이다. 언제 부채질을 한단 말인가.
위에서 고백한대로 「의관」의 일부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더위를 못이기니까 저고리를 벗은 채 남방 바람으로 다녀야하고 그러고 보니 손에 부채라도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옛날엔 무당부채니 광대부채니 하는 것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부채를 더위제거의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기 위한 도구의 하나로 썼다. 지금 나는 춤을 출줄 모르지만 부채가 부채로서의 본래의 사명을 떠난 다른 목적으로 씌어지고 있는 점에 있어서는 나의 부채도 일종의 광대부채나 무당부채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글…金東里(作家) 그림…金映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