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6일 한국교회는 세기적인 경사를 맞는다. 이는 다 아다시피 병인순교자 24위가 「로마」에서 복자로 시복되는 것이다. 우리 겨레는 예로부터 충절과 신의를 숭상하여 충신과 효자와 절부가 시대에서 시대를 이어왔고, 불우한 역사 속에서 위대한 애국의 열사나 의사들이 그 수효를 헤아릴 수없이 많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위해 나아가서는 만물의 주재이신 천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값있고 거룩한 죽음과 인물은 우리 가톨릭순교자 외에는 없다.
그러기에 백년전 동방 한구석 반도에서 사학죄인(邪學罪人)으로 몰려 참혹한 죽음을 당한 그들은 이제 영원의 도성(都城) 「로마」 성전에서 「신의 용사」요 「천상의 복자」로서 추대와 찬양을 받을 뿐 아니라 전세계 5억 신자들의 존경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번 병인순교자의 시복으로서 지난 1925년 7월 5일에 시복된 79위와 함께 1백3위의 복자를 모시는 영광을 누리게 된 우리 한국교회는 현세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은혜와 보답을 받는다. 하겠으며 이에 대한 그 기쁨도 비할 바 없다하겠다.
그래서 동 시복식에는 그 유족들을 포함한 1백40명의 참예단이 수속 중에 있고 각 교구, 각 교회, 또는 각 기관과 단체에서도 그 경축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모임들이 열리고 있는 줄 안다.
설상 지난 1925년 79위 시복 때에는 일제(日帝)치하였고 또한 방인(邦人)교구도 설정되기 전이라 경축다운 경축도 못했었고 우리에게 자축의 능력도 없었으나, 독립된 국민으로서 독립된 방인교구의 신자로서 교세의 비약적 발전 속에서 맞는 이 세기적인 성전을 우리는 최대한의 힘을 기울여 축하함으로써 우리스스로의 신앙을 순교자들의 얼로서 견고히 하고, 한편 대외적으로는 한국가톨릭의 그 조상으로부터의 굳센 신앙을 증거하고 나아가서는 우리복자들이 하루바삐 성인위에 축성되기를 기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의 사업이나 행사가 이제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전국적이고 전교구적이여야 할 행사나 사업도 교구별로 독자적이요, 각 교회별로 분산적인 전철을 이번도 또다시 답습하는 기색이 엿보인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중앙인 서울대교구부터도 ①서울 운동장에서의 기념대미사 ②절두산 복자기념전시관(展示館)의 보완(補完) 및 개장 ③가톨릭예술인으로 동원된 예술축전 ④한글시 백일장과 사생대회 등의 경축행사를 정해놓고, 교구단독행사로서 집행할 것인가 전국적으로 전개할 것인가 그 위원회 구성부터를 망서리고, 22일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의 어떤 결론을 대기 하고 있다 한다.
이러한 형편에서 우리의 주장부터를 먼저 제시하면 지금이라도 단시일안에 시복식 경축을 위한 전 주교님들의 임시총회라든가 각 교구 총대리회의의 소집을 요청하며 이에 호응한 전국평신자단체 중앙협의회의 능동적 활동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시복식 경축의 기념사업이나 그 행사의 범위나 규모 등을 평형(平衡)적으로 정하고 현재의 진행과정을 교환하고 그 인원의 동원 및 교류와 경제적 협력 등이 협의되어야 할 것으로 알며 이렇게 함으로써 그 시복식의 의의(意義)와 경축을 공동적 참여에서부터 찾게 하여야 할 것이다.
실제 경제적인 면의 한예를 들면 이번에 시복되는 순교자들의 바로 순교의 터인 절두산 복자 기념관만 하여도 이제까지 기념성당만 지어 놓았을 뿐이지 그 유품이나 기념사적들을 전시하기에는 진열장도 갖추지 못한 형편에 있다. 그래서 이번에 이를 보완(補完)하고 그 기념관을 개장하기엔 3백만원이라는 예산이 든다고 한다.
이것은 이번 경축사업에 있어 가장 우선적이요 필수적인 기념사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비용을 서울교구단위로만 갹출한다면 이외의 모든 경축행사를 희생해야 되고 만일 다른 경축행사를 한다면 이 기념관의 완성을 보류해야 된다는 형편이라고 듣는다. 그러나한 한편 생각할때 이 기념관이 서울에 위치한다고 서울 대교구만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각 교구에도 복자기념성당이 있고 각기 그 성당을 완성하고 경영유지하기에 여유가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각 교구의 기념성당과 절두산 성당은 그 지니는바 유서(由緖)가 다르며 더욱이나 기념관을 완성함에 있어서랴. 외국의 귀빈들이 한국에 오면 동작동(銅雀洞) 국립묘지를 참배하듯이 우리 교회도 앞으로 외빈들이 오면 이 절두산 성당을 찾게 될 것이 아닌가!
서울대교구 경축위원회에 참석한 입교한지 얼마되지 않은 인사 한분은 『가톨릭교회는 밖에서 보기엔 무서운 통일 조직력을 지닌 듯 한데 안에 들어와 보면 대내적으론 아주 고립적(孤立的)인 면이 있어 눈에 띤다』고 말하고 또한 이어서 『가장 영신적(靈身的)이어야 할 교회내의 사고방식이 정신적인 것도 못되고 타락된 현실에 굴종적(屈從的)인데 놀란다』고 술회한다.
물론 저러한 표백(表白)은 결코 교회의 본질이나 그 정신도 아니며 현재 한국 가톨릭이 지니고 있는 탈피 못한 타성의 발로가 지적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이러한 타성을 탈피하는 의미에서도 이번 시복식 경축행사를 전국적이고 전교구적인 행사로서 추진하는데 주저치 말아야 할 것이며, 이것이 곧 우리복자들이 극한상황(極限狀況) 속에서도 서로 돕고 서로 이끌며 목숨을 바쳐 이룩한 교회를 계승하는 것이 될 것이며 또한 <로마>가 뜻하는바 새로운 교회상(像)도 실천하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