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가톨릭」 즉 공교(公敎)하면 「프로테스탄」 즉 신교에 비해 어딘지 보수적이요 따라서 완고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어떤 화가가 말하기를 다같이 그리스도교인이지만 외부사회에서 대할 때 가톨릭 신자는 종교인 냄새가 덜하고 신교 신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쉽게 종교인 냄새를 풍긴다는 것이다. 여기엔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이런 대외적인 신앙표방의 자세는 비단 신자개인에게 뿐 아니라 교회전체의 분위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구별됨을 볼 수 있다. 가톨릭산하 모대학은 일년에 한번정도 그 대학개교기념일대 미사한대 드리는 것이 고작이요, 교직원이나 학생들의 신앙자유는 직접으로 간접으로 완전히 보장되어 있는 줄 안다. 반면 국내 기독교 산하 모대학은 거의 미신자 · 신자를 막론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체플」에 의무적으로 출석하게 되어있다. ▲신앙을 표방하는 외적 자세에 대해 어느 것이 옳고 나쁘고 따지기 전에 이런 면 호가실히 프로테스탄은 포교에 있어서도 적극적이며 따라서 隊他宗敎 자세엔 배타적이고 반면 가톨릭은 융통성이 있고 포교에는 속구적인 인상이다. ▲기독교아동복리회는 산하기관인 「아펜슬러」어린이회에 가입되어 있는 요구호대상자중 다른 종교 어린이 약간명과 가톨릭어린이 1천8백명에 대해 한달에 1천7백원씩 지급하던 학비보조를 중단한다고 했다. 전체구호대상자 8천명중 2할을 차지하는 불교계와 미신자아동들은 제외됐다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또 당사자측은 가톨릭아동들 가운데도 개종하면 계속 지급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종교자유가 기본인권이라는 것은 민주주의사회에서의 상식이고, 국적 · 종교 · 신앙을 차별하여 구호하는 것은 사회사업원칙에 어긋나며, 아동복지시설 기준령에는 금지되어 있다 한다. 「바티깐」 공의회 이래 고양된 「에꾸메니즘」 기운은 대내외적으로 환영과 호응을 받고 있다. 현대인류발전에 대한 그리스도인 전체의 봉사를 생각하더라도 公 · 新敎는 협력할 입장에 있다. 이렇게 같은 그리스도신자 상호가 善隣이 되지 못하고 배타적이요 시의적이면서 우리가 일반사회의 不義非情을 비판하고 시정하려는 어떤 명목도 능력도 없다. ▲信條를 위한 신조, 護敎를 위한 효교를 위해 적극적이나 한편 이런 편벽된 신앙태도는 실제 그리스도교 근본정신인 사랑엔 소극적이요 화석처럼 굳고 메마를 수 있는 예는 우리는 개인에게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원칙적인 문제는 우선 미루고 우리측에선 불의에 시련을 당하게된 불우한 어린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