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표현과 막말로 하자면 예수처럼 그 어머니의 애를 태운 아들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七苦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이 마리아의 가슴팍을 뚫은 일곱가지 고통의 못(針) 중에는 아들 예수가 十字架에 목박혀 惡刑慘慽을 당하는 어머니로서의 고통은 두말 할 것도 없거니와 이와는 달리 열두살 때 성전에서 武斷失踪과 같은 예수의 神的面目을 인간的으로만 보면 예수같이 인자한 분이 그 부모에게 어쩌면 그렇듯 몰인정스러울까 하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福音에 꼭 한대목 이러한 우리의 邪念을 털어 주고도 남는 또한 예수네 母子間만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그윽한 장면이 있다. 즉 요한복음 2장 1절부터 8절까지를 여기서 내대로 읽어나가보면 『「갈릴래아」 「카나」촌에 혼인잔치가 있어 모친 마리아도 가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초대되어 갔었는데 때마침 잔치집에 술이 떨어지니 모친 마리아가 자기아들 예수를 보고 「술이 없는데 무슨 방도가 없겠는가!」하셨다. 예수 이 모친의 말씀에 「여인이여!(이 말은 이스라엘의 여인에게 향한 존칭으로서 아내나 어머니에게도 쓰며 또 자기 자신에게도 이렇듯 3인층을 쓸대도 있다고 함-筆者 註) 술없는 것이야 어머니나 저나 상관할 바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도 저는 함부로 기적을 행하고 나설때가 아닙니다」고 대답하신다. 그러나 그 모친은 덮어놓고 심부름 하는 사람들에게 『저 사람이 시키는대로만 하라』고 이른다. 그때 거기에는 마침 여섯개의 두 · 서너말들이 물동이가 있었다. 예수 그제서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말씀하시기를 「물로 그 항아리들을 채우라」하시고 심부름꾼들이 분부대로 하니 「이제 퍼서 果房(잔치때 음식 보살피는 곳-筆者 註)으로 보내라」하셨다. 果房에서는 물이 술된 것을 맛보고도 어디서 난 줄을 몰랐으되 물깃던 사람들은 알았다』
이상의 기록은 周知하는 바와 같이 예수 「카나」촌에서 행하신 첫 기적 장면인데 우리가 주목할 몇가지 점이 있다.
첫째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미 자기 아들 예수가 無에서 有를 낳게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을 믿고 있다기 보다 알고 계셨다는 점이요. 둘째 어머니의 청을 들은 예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神的 혹은 公的인 것으로 어머니(인간)의 私的인 것이 관여할 바 못됨을 밝히시는 점이요, 셋째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그런 예수의 거절 말씀에도 불구하고 一方的으로 시뭅름군을 시켜 『저 사람이 시키는대로 하라』고 기적을 준비하시는 것이다. 이 막음 대목을 『예수의 生涯』를 쓴 프란쯔 M. 월람 박사는 『마리아께서는 그 確固不動한 信賴로써 예수께 마치 暴力을 加하듯이 기적을 강제적으로 행하시게 했다』고 표현한다.
여하간 예수께서는 자기 모친의 이 억지나 떼쓰듯한 청탁과 분부를 말씀으로 거절하시다가도 실제로는 행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장면을 익으며 그야말로 그 어머니와 그 아들만이 서로 믿고 알고 또 나누는 대화와 행동과 애정을 엿보고 맛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가톨릭에서는 성모께 기구하기를 권하고 즐기는 것이다. 천주의 성총을 빈항아리에 술채듯 얻어 내라고 성모께 조르는 것이다.
具常(詩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