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는 길도 많고 오는 길도 많다. 그리스도도 『나는 길이요, 진리료 생명이라』고 하셨다. 유교에서는 이 길을 중대시 하여왔다. 왜? 인생의 걸어야 하는 길, 달통해야 하는 길, 행하여야 하는 길을 다 「道」 즉 길로 통했다. 그많은 길 중에도 가야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무슨 길? 죽음의 문을 통과하는 길이다. 이 길은 영웅걸사라도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만민이억만년을 두고 같이 가는 길, 또 수억만년을 두고 억조창생이 걸어가야 할 하나밖에 없는 길이다. 이 길에 들어서면 만사는 「스톱」이다. 더 악할 수도 더 착할 수도 없는 외따른 골목길이다. 이 길을 요리조리 피할려고 그 얼마나 많은 인생이 매닦이 질을 쳤던가? 별 수 없다. 좋건 싫건 들어서야 하는 그 좁은 길, 죽음의 길이다. 이 길에 잘 들어서야 그리스도의 가르친 진리대로 영원히 살 수 있는게 아니겠는가? 이 막다른 골목길에 들어서기 전에 남을 위하여 「빨란까」(PALANCA=꾸르실료에서 말하는 희생)의 길을 많이 걸을수록 막다른 골목길에서 영원한 훤한 벌판 길이 트일 것이 아니겠는가? 우는이, 고통겪는이, 아픈이, 실망한이, 자포자기한이, 고독한이, 아픈이, 실망한이, 자포자기한이, 고독한이, 냉담한이, 성당길에서 멀어지는이, 천주님 품에서 떨어저나가고 있는이, 진리의 대화를 궁금해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는 「내길」은 몇번이나 되었던가. 우리 한국천주교회사를 아름답게 순교의 피로 장식한 복자 丁 바오로 하상(夏祥)씨는 한국에 진리의 사도들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북경의 험한 길을 20번이나 기쁘과 희망을 품고 오고가지 않았는가? 그 머나먼 길을!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과 「마카오」에서 동문수학한 최 도마 신부는 1849년 섯달 그믐날 눈길을 뚫고 입국하여 12년동안 우리 돞오들이 마지막 막다른 길을 잘 통과하기 위하여 5천리길을 하루같이 걷지 않았는가? 외국 주교신부님들이 최 도마 신부를 찬양하기를 『길에서 산 청춘』이라고 하였다. 가자! 오늘도, 내일도 그 가련한 영혼들의 막다른 골목 죽음의 길을 잘 통과하기 위하여 대화의 길로, 방문의 길로, 희생의 길로, 이 숨길이 다 하기 전에! 우리의 갈길이 서로 서로 바쁘지 않은가? 가야할 길에는 뜨믄뜨믄 하고 가지 말아야 하는 길에는 왜 그렇게 종종걸음에 줄다름질을 치느냐?
吳基先(서울 大方洞 본당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