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8월 20일과 25일 두차례에 걸쳐 두분의 귀빈을 맞았다. 이들은 한국교회 敎階制를 設定한지 6년만에 한국교회를 직접보고 알기위해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 두 귀빈은 모두가 지원과 지도를 필요로 하는 전포교성성인 인류복음화성성 고위지도자인 동 성성 차관 삐네돌리 대주교와 동 성성 직속 포교회 사무국장 콘웨이 몬시뇰이다.
이 두 고위당국자는 명목상으로는 독립적인 교회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피원조교회인 한국을 방문하여 언제나 독립을 할 것인지 추궁은 하지 않고 한결같이 「발전하는 교회의 상징」 「젊음이 넘쳐흐르는 교회」로 極口칭찬만을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은 성실하고 친절하며 우정이 넘쳐흐르며 열성과 영성으로 가득하고 성소가 풍성하다고 온갖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한국교회는 멀리 「로마」로부터 극동의 한구석인 한국교회를 보고 알기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는가? 아니 무엇을 제시 혹은 제의·요구했을까? 그것을 위해 어떤 준비나 계획을 했을까? 『언제 어떤 분이 방문하시니 꽃다발을 준비하고 많이 나와서 손벽을 치라』는 지시뿐 그다음 이야기는 알길이 없다. 이같은 운영이나 처리는 결국 무관심과 비협조를 자아내고 형제애 대신 敬遠을 낳게 할 우려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비단 고위당국자의 시찰에 대비해서 뿐아니라 신자 한사람 한사람의 성실하며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는 정책으로는 너무도 빈손들고 나섰음을 평소부터 개탄해왔으며 결코 오늘과 같은 형제의식을 찾아 볼 수없는 환경아래서 그리스도안에 하나되기란 쉬운 일이 아닌 줄을 이 기회에 다시 반성해야 한다고 느낀다.
첫째 참여의식의 부족이 원인이긴 하나 우리 신자들은 구태의연하게 우리 주교님들로 하여금 돈타령만 하고 구걸 잘하는 선수로 격하시키고 있다. 우리는 주교님들이 멀리서 온 귀빈들을 넘치는 우정만으로 떳떳이 맞이하지 못했다는 느낌은 없는가? 과연 그렇다면 우리스스로 자성할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이 귀빈들은 보다 성화한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더 많이 만나고 보다 더 많은 형제들이 복음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기위해 내한한 것이다.
어느 포교지역치고 그렇지 않은 것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경우도 순교시대를 지내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립이 쉽지는 않았지만 受援一方的인 교회생활을 1백50년을 계속했고 6.25동란으로 인한 원조를 필요로 하는 어려움을 겪는 동안 한국일반사정과 똑 같이 事大主義가 몸에 베어버렸다.
이런 환경안에서 정말 도움을 필요로하는 신자는 물론 필요치 않은 사람들까지가 교회는 무엇인가 주는 곳이 되게 하고 말았다. 성당을 짓는것 운영하는것. 복음을 전하는것 이 모두가 성직자가 해야하고 『우리신자는 주일날 미사에만 참여하면 된다』는 사고를 거의 탈피 못하고 있다.
근년에 늘어난 사장족들까지 서양의 노파들이 식모살이로 모은 푼돈 원조가 적어지면 불평이고 이것을 많이 받아오지 못하는 성직자는 무능으로 몰아세운다. 그런가 하면 성직자들 특히 선교사들에 아첨을 하고 가까이에서 온갖 위선적 방법으로 사기를 하는데 여념이 없다.
다른 한편 공의회 후의 파도적 풍파와 인간애결핍·권위의식·독선적 폐단에 젖은 일부 성직자들은 절망에 가까울 정도로 무관심과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위선이란 비판을 받고도 분격만 할뿐 반성파쇄신을 지워버리고 질서에 반발만을 하고 있다.
이같은 환경과 경험부족 그리고 환경의 강력한 압력·공동의식의 결핍 등으로 주교님들은 지도력을 유지하기에 상당히 어려움속에 있다.
이같은 현상에서 우리는 두 귀빈의 찬사에 흡족해하고만 있을 수 있을까? 몇푼의 원조약속을 받았는지는 알려고도 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 만족만 해서 괜찮을까? 그 후의 한국교회는 어디로가는 것일까?
조금의 수고, 얼마간의 괴로움은 서로 참고 서로 이해하는데 힘써야지 근시안적 상황들만이 點綴한다면 무엇을 창작할 수 있을까? 말로만의 인내·사람·선행이 교회는 아니다. 그리스도십자가의 죽음이 이 위선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전체를 무시한 자기본당 자기교구만을 위한 옹고집은 전체를 망치기 일쑤다. 막연한 성화, 虛實한 그리스도의 증인이나 복음화가 아닌 구체적인 계획적인 그리고 「하느님 백성」 전체를 위한, 공동성에 기반을 둔 노력이 절실할 뿐이다.
우리는 교계제가 확립된, 成人의 교회가 돼야한다. 두 고위성인자는 아낌없이 우리를 분명히 칭찬했다. 그러나 잊지 않고 말했다. 형제애를, 협동정신을 그리고 공동성(단체성)을 그리스도는 개인이 아니고 전인류를 구속코저 하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