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고맙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하는 말들은 그저 그때 그때 적당히 얼버무려버린 말이지만 『고맙다』나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의 깊은 의미를 지금처럼 절실히 느껴본 적은 없다. 죄를 지었기에 응당 마땅히 받아야 할 벌로써 징역을 살아야겠지만 2년이 채 못되는 징역사리를 통해서 자유스런 생활보다는 부자유스런 생활 속에서 영양가가 높은 음식물을 섭취할 때 보다는 깡보리밥을 씹으며 살아갈 때, 호화스런 복장보다는 광목 다섯마와 삭발한 꼬락서니인 불우한 환경속에서 고마움을 절실히 음미하며 예찬할 수 있는 넓은 도량을 가졌으니, 지저분한 과거의 낡은 생활에 비긴다면 내딴에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담배꽁초에서 담배의 진미를 알 수 있다』는 말이나 『마음이 가난한 자는 진복자라』는 성경말씀이 어쩜 나이 현재생활과 비교한다면 제격이 아닐 수 없다. 이곳 특수사회 속에서 속죄의 멍에를 양어깨에 질머지고 살아가는 우리 수인들에게 찾아와 영육간에 많은 위로와 위안을 주시는 고마우신 분들이 있으니, 이분들은 다름아닌 각 종교계 인사들이다. 불교가 그렇고 기독교가 그렇고 가톨릭이 그러하다. 이분들은 한결같이 찾아와 참으로 고마운 일들을 많이 해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톨릭은 나의 시들은 마음을 완전히 소생시켜 주었다. 이건 흡사 강한 태양열과 수분부족으로 시들어 버린 수목이 단비를 맞는 그러한 것과 조금도 다를바 없다. 신부님들은 한결같이 찾아와 주신다. 당소 교화대책위원으로 계시는 P신부님이나(아현성당) C신부님 그리고 서강대학교 지도신부님으로 계시는 J신부님이 매주 금요일과 매월 셋째주일이면 찾아오셔서 우리들의 마음은 조금도 외롭지 않다. 그러고 보면 아현성당은 우리와 끊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 언제보아도 상냥하고 인자하신 P신부님은 우리를 대할 적마다 『여러분 그동안 얼마나 고생들이 많으셨읍니까? 어디 몸이라도 불편하신 분은 안계신지요?』라고 정에 넘친 말씀을 하실 적엔 눈물 겹도록 고마움을 느껴 모든 괴로움은 봄눈 녹듯 그순간 스러지는 느낌이다. 언제나 사랑에 굶주려 외로운 우리들은 따뜻한 어머님의 품속에 안긴 것 같은 느낌이다. 요즘 우리들의 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우리 신부님 최고』라는 말이 퍽 유행이다. 지금도 가장 인상깊은 것은 아현본당 성가대원들의 위문공연이며 「코메디안」 K씨의 배꼽을 쥐게하는 성대묘사는 어쩜 K씨가 가톨릭신자라는 점에서 더욱 이채로웠다.
그리고 요즘에는 한양대 및 이화여대 「젬마」회 남녀대학생들이 80명이 넘는 이곳 가톨릭신자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고맙다는 말 이루다 표현할 수 없지만 사회의 기생충에 불과했던 우리들을 사랑과 웃음으로 대해줄 땐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여기에는 P신부님이나 C신부님의 숨은 공로이 덕인줄 우리는 아록 있다. 그리고 우리들과 함께 기거하며 지나는 고 분도(중열) 담당님의 눈물겨운 노고가 오늘의 영광스러운 열매를 맺게 해주었다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이것은 오로지 우리 인간들의 순수한 박애정신에서보다는,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산 표본이라고 본다 비단 나혼자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이 고마우신 호의에 다소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길이란 무엇보다도 새 사람이 되어 손색없는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는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본다. (서울교도소서)
柳楊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