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사는 社會에서 때로는 잠시나마 남과 더불어서 살기가 거북함을 느낄때 처럼 외로울 때는 없는 것이다. 하기야 남들이 한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법은 없다하더라도, 같은 때와 같은 곳에서 남들처럼 자신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判斷을할때 저절로 자신도 모르게 함께 머물기마저 싫어지고 더 있기가 민망스러울 때가 많은 것이니 이럴 때가 아마 떠들 석한 사람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孤獨이 아닐가 싶다.
이런 일들은 흔히 茶房안의 풍경이나 길바닥 위에 내뱉은 가래침을 보고도 느낄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좁은 구석진 모퉁이에서 느낄수 있는 것은, 가령 대중 食堂에가서 어느 모서리에 앉게 되면 누구나 잇받을 쑤신 꼬지들을 이리저리 팽게쳐둔 흔적들을 볼 수 있다. 무슨 탓으로 그렇게 하고 갔는지는 모르기는 해도 그런 버릇들이 어떠하다는 점은 새삼스레 얘기할 성질의 것도 못된다.
예끼, 하고 스스로 역정을 내다보면 옆에서는 벌써 먼저 먹은 것을 자랑이나 하듯이 씩씩하고 입을 다시면서 맛있게 이쑤시기하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먹다말고 차마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게 되니 딱하다.
남을 돌보지 않고 재혼자만을 생각하는 버릇은 汽車여행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날이 더우니 열차안에서 웃저고리를 벗는 것은 좋다하더라도 앞뒤에 어떤 이들이 함께 앉아 오는지도 아랑곳없이 런닝셔츠에 겨드랑까지 나오도록 홀랑 벗어버리고 앉아있으니 보는이가 비록 젊은女人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꼴을 바로보기가 송구스러울 만큼 아찔하다.
어떤 이들은 가족과 함께 避暑가는 길인지는 모르나 옆에는 아버지가 밑 바지를 벗어 걸고 파쟈마바람으로 털돋힌 다리를 긁으면서 눈을 지긋이 감고 가족간에 기대어 누워자는 꼴을 볼 수 있으니, 구겨진 마음을 달랠길 없어 도리어 쓸쓸할 때가 많다.
식당이 외양간이 아니고 열차안이 안방이 아닌 것이 분명하거늘, 사람들은 남과 더불어 살면서도 어찌하여 이렇듯 남을 외면하고 홀로 살려고만 하는 것인지. 禮가 아니면 듣지 말고 보지도 말고 행 하지도 말라는 克己復禮라는 말이 그립기만 하다.
權寧百(東亞日報 論說委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