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도 인정한다. 쌍가락지도 인정한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 독재와 부정선거라고 서슬이 퍼렇던 지난날, 「그러나」라는 이 세글자가 부정선거를 공명선거로 둔갑시켜 버린 일이 있다. 사실 「그러나」라는 이 말이 얼마나 많은 사업계획을 채 실천도 해보기 전에 숨통을 막아버렸는지 모른다. 바로 이 「그러나」는 의도(意圖)와 실천 간에 가로놓인 「건너지 못할 강」인 것이다. ▲만민을 가르치는 것이 교회의 생활이며 가르치는 권위를 교회의 생명으로 여김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가르치는 수단으로서 현대의 총아로 등장된 것이 바로 「매스콤」이라는 사실을 교회는 벌써부터 인정해 왔다. 그래서 세계 주교대의원의 특별 교리위원회도 『신학적 가르침은 특히 현대적인 「메스 메디아」의 힘을 빌려 선포하고 유포시키도록 할 것』을 교황에게 건의했고, 역대 교황들도 「매스콤」의 중요성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그 창달(暢達)을 호소해왔다. ▲공의회가 끝난 후 신자들 사이에 교회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회의(懷疑)를 품고 갈팡질팡 하는 이도 있고, 멍한 자세로 허탈상태에 빠져버린 이도 있다.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 앞서지만,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메스콤」의 지도성을 자각만 할게 아니라, 그 육성에 진력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메스콤」은 신자들의 신앙상의 지식의 원천이요, 교구와 교구, 신자와 신자간의 일치를 도모하며, 여론을 반영시켜 교회이 민주화에 박차를 가함은 물론, 나아가 선교의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카로운 친구가 『교회생활에 「메스콤」을 중요한 도구로 이용하지 않으면 교회는 일종의 우민(愚民)사목정책으로 흘러 냉담자가 속출할 것이고… 종래와 같은 자세로, 종래와 같은 도구로 이용한다면 교회이 앞날엔 정체(停滯)만이 있을 뿐』이라고 핏대를 세우면,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그러나」 「그러나」를 연발한다. 더우기 『그러나 타교구에서 출판되는 것이라서…『라는 말마디엔 주교 공동성이란 것이 완전히 무색해지고 만다. 「메스콤」 창달을 위해 한국교회는 교구라는 행정구역을 초월해왔다고 자부할 날은 언제 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