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군종(軍宗)의 날이다. 성직자의 몸으로 군에 종군하는 신부님들과 그 사목활동을 일년에 단한번 생각하는 날이다. 내일이면 완전히 잊고 무심하여 또 일년을 지내는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처럼 종군사제들의 활동은 물론 그 존재 마져도 잊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러면서도 간혹 군이 관련된 불미한 기사가 보도되면 누구보다도 먼저 흥분하여 「바람직한 군인」이 되지 못하고 탈선했음을 탓하고 꾸짖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때로는 우리의 군인들을 마치 남의 나라의 것처럼 적대시하거나 증오하지 않았던가.
그럴 때도 우리는 종군신부의 사명과 그 사목 활동을, 아니 군대 내에 많은 성직자가 들어가 있어야 하겠다고 까지는 미쳐 생각할 줄 모르고 지내왔던 것이다.
우리는 이상적인 인간으로 구성된 실로 국민에게 봉사할 줄 아는 군대를 원한다. 우리는 군에 가있는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을 잃지 않고 착한 군인이 되어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한다. 우리는 군에 복무하고 있는 우리의 형제나 남편이 타락하지 않고 항상 성총 속에 살기를 누구보다도 빌고 있다. 군에 있을때 입교 영세했노라는 청년을 대할때 마음이 흐뭇해진다. 군에 있을때 종군신부님에게 많은 위로와 감명을 받았노라고 비록 영세는 받지 않았지만 가톨릭을 잘 알고 있노라는 청년을 만나면 십년지기를 만난 듯 반가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도 종군신부나 그 사목활동을 도울 생각은 미처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60만 대군을 자랑한다. 이 막강한 군대의 병사들 대부분이 병역을 마치면 각자 고향으로 돌아와서 그 지역사회발전을 위하여 활동할 중견청년들이요, 나아가서는 우리 국가장래를 맡아 줄 사람들이다. 이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군대복무기간이란 그 개인의 인생관 확립에 실로 중대한 시기라 하겠다. 이런 증대한 시기에 그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깨우쳐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그들이 돌아와서 우리와 같이 사도직을 수행할 것을 생각하면 종군신부의 사목활동과 본당신부의 활동이 별개로 분리될 수 없는 곧 직결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인간이 모인 곳에 성직자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이상적인 군인은 과학적 병술만으로 족하다 할 수 없으며, 이상적인 군대는 병술과 아울러 더욱 더 많은 신앙을 포함한 정신적 발전이 적분적 완성에로 조화되어 있을때 비로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때 군에서는 정신문제를 정훈부문에서 다루고 있지 않는바 아니나, 종군신부의 존재와 그 활동의 의의가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새삼 인식되는 바이다.
그러나 현재 60만 대군에 불과 42명의 종군신부님들이 동분서주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며 얼마나 엄청난 넓은 지역이냐. 60만에 42는 무시될 숫자다. 없는 것과 같은 숫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지상의 소금으로 양적으로 너무 부족하다. 이러고서야 부패를 막는 간저리기는 고사하고 어찌 맛을 기대할 수 있으랴. 지상의 빛으론 너무 어둡다.
아무리 동분서주한들 도깨비불 구실밖엔 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으리라.
이처럼 망각되고 이처럼 소외된 군종활동, 우리는 입으론 공동체를 부르짖으면서도 너무 오래 그들을 잊고 있었다. 군종들의 사목활동은 고사하고 우선 종군신부님의 존재라도 잊지 않아야 하겠다. 우리는 지난날의 복자들의 그 유업은 현양할 줄 안다. 복자 현양을 위하여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미래의 복자들은 생각할 줄 모른다. 일선 장병을 위하여 간혹 생각할 줄 안다. 군대에 가 있거나 일선에 출전하고 있는 형제들을 위하여 남편을 위하여 아들들을 위하여 위문할 줄은 안다. 그러나 종군신부님들을 위하여 위문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선 그들이 낙망하지 않고 좌절 되지 않도록 위문과 격려를 보내며 그들을 위하여 기구하며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보내는 운동이 지금이라도 곧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군종신부를 위문하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그들의 사목활동을 후원하는 일이다. 신부님들은 기동력도 없다. 탄약에도 해당할 서적도, 책자도 없다. 기타 사목에 필요한 장비도 없다. 맨주먹으로 국군이 있는 곳에는 다 가야한다. 60만명의 군인을 다 만나야한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보살펴 줄 수 있는 짧은 시간은 남들이 근무를 마치고 쉬는 시간이다. 얼마나 고역이냐. 종군신부는 성사집행만이 그 임무가 아니다. 장교는 장교대로, 사병은 사병대로 그 영혼들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인간 전체의 문제를 생각하며 각가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고 따뜻한 도움을 주는 것이 곧 군종의 임무이다. 많은 일을 하기위해서는 많은 물자가 필요하다. 신자들이 그 뒷바침을 하지 않고 누가 할 것인가. 군종의 사목활동을 후원하는 단체를 본당마다 하나씩 조직하여 계속적인 활동과 일년중 하루만이 아닌 언제나 보급이 지속되는 후원을 하자. 본당내의 제대 장병이나 군인가족들이 솔선 단결하여 이런 활동을 시작해주었으면 더욱 뜻 깊은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일년동안 종군신부님과 그 사목활동을 몇번이나 생각했던가, 얼마나 도왔던가, 오늘 종군의 날을 맞아 잠잠히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