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日날 미사참례를 마치고나서 「眞理」에 關한 얘기를 한다는 것은 퍽 즐거운 일이며 自然스러운것 같습니다. 흔히들 「IN VINO VERITAS」라고 하여 酒席에서 난데없이 「眞理」에 關한 率直한 얘기가 나오기도 합니다만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眞理」를 생각하고 얘기한다는 것은 더욱 妥當하고 健全하지 않겠읍니까. 항상 그래야 하겠지만 特히 主日에 「마음을 드높이(SURSUM CORDA) 天主를 찬양한다는 것보다 더 큰 幸福이 또 어디 있겠읍니까?
醉中이 아니면 良心의 사마침을 털어놓지 못하고 「眞理」를 말하기를 싫어하는 그러한 「地下室生活」은 아직 「聖神의 술」맛을 모르는 生活입니다. 祭壇앞에 나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미사경문 첫머리에 『내 기쁨, 내 즐거움이신 천주께로 나아가리이다』한 것은 우리 信仰生活의 진수를 나타낸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생각나는데 이경문은 요즘 새로 번역된 것보다는 原文대로 번역한 以前의 번역이 더 인상적이었읍니다.
『나의 青春을 즐겁게 하여 주시는 天主께로 나아가리로다』(ADDEUM QUILAETIFICAT JUVENTUTEM MEAM) 白髮이 성성한 老神父가 이 경문을 외우는 것을 볼 때마다 퍽 인상적이었읍니다. 천주 앞에서는 우리는 항상 靑春임에 틀림없읍니다. 혹시 이제부터의 韓國信者들은 나의 「靑春」을 즐겁게 해주시는 천주라는 것을 看過하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우리들의 靑春의 즐거움의 源泉이 天主께 있다는 것은 千번이고 萬번이고 強調해도 遇하지 않을 것 같읍니다. 흔히 우리들은 信仰에 對한 얘기 眞理에 대한 생각을 하는 중에 「罪」가 된다든지 「罪」가 안된다든지하는 말을 많이하여 마치 天主敎라는 것은 罪에 억눌려사는 것. 罪의 틈바구니에서 꼼짝못하는 恐怖의 生活인것 같은 느낌을 주는 때가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有能한 運動選手는 決코 競技의 「룰」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勝利에의 決意에 가득차 있을 것이며 까다로운 「룰」은 그 勝利를 더욱 큰 것으로 만들 것이며 그것은 自由自在한 妙技의 源泉이 될 것이 아니겠읍니까.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 앞에서 행여나 무엇이 잘못될 가바 눈치만 보고 멋대로 뛰어놀지 못하는 어린이는 참으로 어린이답지 못한 것입니다. 눈치보지 않고도 뛰어놀 뜰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하라』 聖아우구스띠노의 말씀도 그런 뜻이 아닌가 합니다.
『마음을 드높이』, 마침 하늘도 드높은 가을 9월 순교자의 달입니 다.
새남터에서 절두산에서 眞理를 위해 피흘린 달입니다. 그러나 決코 悲劇의 달은 아닙니다. 自由와 平和와 幸福은 항상 우리의 것입니다. 「또 하나의 太陽」은 그림자가 없는 까닭입니다.
朴甲成(西江大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