寬容은 사람에게만 있는 美德이다. 寬容은 결코 바보나 고집센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다. 賢明한 判斷力만이 그 美德을 나타낼 수 있다. 感情에 앞서 利害 得失을 옳게 따져서, 이기고 지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듬직한 美德이라고 본다. 相對便의 잘못을 일컬음으로써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萬一에 그 結果가 自己의 短慮 輕率을 나타내게 되는 경우 얻는 것보다도 잃은 것이 더욱 클 수도 있다.
그렇기 萬事에 感情이 앞서면 失手를 하기 쉽다는 것이다. 感情이 爆發된다는 것은 往往 그 人品의 좁고 적음을 엿보이는 損失을 가져오고 第三者의 求景거리, 이야기거리가 되기가 쉽다.
그래서 德이 있는 이는 비록 心情이 傷하는 일이 있어도 좀처럼 나타내지 않고 深思熟考하여 愼重하기에 안깐힘을 쓰나보다.
요사이 우리의 周邊에는 여러가지 시끄러운 일이 흔해졋다. 당연히 순종할 것으로 알던 것이 뜻밖에 異見이 터져나오고 서로가 감싸야 할 處理련만 헐뜯고 눈흘기고 - 激해지며 시비를 일으킨 無勢이다. 이것은 不祥事이다. 애당초 남에게 흉잡힐 틈을 주지 않은 것이 不察이라면 그럴법도 하지만 그것을 꼬집어 뜯는 態度 또한 경솔하지나 않을가.
어느 組織에서든지 질서가 허무러지면 난장판이 되기가 쉽다. 모든 병통은 各自가 그 分을 지키지 않고 턱없이 나대는 데서 始發된다.
寬容을 美德이라면 不服從이나 下剋上은 分明過誤이다.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덤비는 者에게는 榮光은 없다. 얻는 것은 후회뿐이다. 上下 左右를 돌아보지 않고 自己 마음대로 行하는 때 돌아오는 것은 고독과 수치뿐이다. 어느 곳에든지 사람이 모여살고 한울타리 속에 어울려 지내려면 반드시 規律이 있고 그 規律에 따라 指導者는 있는 法이다. 指導者가 獨裁를 하지 않는 以上 順從하는 것이 人間만이 누릴 수 있는 자랑이요 또 美德이기도 하다.
自己가 行하는 바가 他에 波及되는 영향은 미처 생각지 않고 마구 나대는 態度는 삼가야 할 것이다. 더우기 영향力이 큰 때 그 잘못은 더욱 重大하다. 사람은 感情의 動物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言行에 愼重치 못한 이를 헐뜯어 일컬는 것이니 듣기만 해도 逆겨운 말이다.
李瑞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