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해마다 年初에 聖가정축일을 보내면서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聖가정을 이루어 주님의 축복을 받으라고 가르친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와 요셉을 부모로 모시고 30년동안 살으신 그 사정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가난 속에 태어나 가난하게 살면서도 그 가정은 언제나 평화와 사랑의 집이었고 모든 인류의 구원이 그 속에서 준비되었던 것이다.
인류의 시조가 「에덴」 동산에서 시작된 것과 같이 우리는 모두 가정이라는 동산에 태어났다. 가정은 夫婦와 親子, 그리고 兄弟姉妹라는 사랑으로 맺어진 사회이다. 구리의 육체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바탕이 그 속에서 자라도록 되어있다. 그런 모든 기능이 완비된 가정을 聖가정이라고 부른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권리 · 의무의 관계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관게는 그런 의식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 훨씬 많다. 서로가 권리의무를 잘 지키기만 하면 원만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크게 속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가정은 처음부터 권리 의무로 맺어진 계약사회가 아니다. 夫婦間의 사랑과 親子間의 사랑, 그리고 兄弟姉妹間의 사랑으로 맺어진 生得的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사랑에 흠이 생기면 그 가정의 평화는 쉽게 깨어지기도 한다.
인간사회가 사랑속에서 오나성될 수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은 누구나 사랑 속에서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은 언제나 희생으로 나타나면서도 그 희생이 사랑에서 오는 것이기에 고통 아닌 행복으로 昇華되는 것이다. 사랑이 代價를 요구하지는 않는 것과 같이 그 희생에도 條件이 붙지 아니한다. 여기서 우리는 계산이 없는 인간관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凡人의 사랑은 서로 反射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데 留意하여야 한다. 쉽게 말해서 내가 많이 사랑하면 그 사랑이 上帶枋에 반사되어 내게로 되온다는 것이다. 내가 많이 사람하게된 것은 相對方이 주는 사랑의 반사를 그만큼 많이 받았다는 것으로도 된다. 그러나 그 相互作用이 代價나 條件으로 변한 대에는 이미 그 사랑은 이익의 흥정으로 변질된다.
또한 그 흥정은 上帶枋의 사랑을 원하는 者가 먼저 사랑을 바쳐야 한다는 것으로 된다.
聖가정의 사랑은 흥정하는 사랑이 되어서도 아니된다. 참다운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배워야 한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가진 희생을 다 바치고도 남아 넘쳐 흐르는 그 사랑을 배워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가정이 되도록 노력하자. 가치가 전도된 오늘의 「가정」에 대해 우리 그리스도者들은 책임을 절실히 느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