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兄!
그러나 信仰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將次마지할 光榮에 比하면 現在의 苦痛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使徒들은 말씀했지만 人間의 편에서 아직 間으로서 이世上에 머물러있는 동안 人間的인 모든 弱点을 한몸에 지니면서 『마음을 드높이』하고 眞理의 벗으로서 眞理에 誠實하며 부끄럽지 않게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까.
『나없이 너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하신 말씀을 가며 가며 痛切히 느끼지 않는 信著가 어디 있겠읍니까. 人間은 저마다 하나의 砂漠이며 「외롭고」 「가난한 마음의 목마름을 버릴 수 없고 精神은 가벼우나 肉身은 한없이 무거운 것을 우리는 알고 있읍니다. 人間은 다리(橋梁)와 같이 南岸에 걸쳐있는 것입니다. 人間은 人間以上의 것입니다.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十字架입니다.
우리는 文化의 價値라든가 文明의 發展이라는 것을 決코 拒否하거나 그것이 不必要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敎會는 文化의 原動力이었으며 保頀者였읍니다. 眞理를 모르는 文化가 얼마나 많은 誤謬에 빠졌던가를 보아도 알 수 있읍니다. 그러나 아무리 文化 或은 文明이 發達해도 우리들의 十字架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十字架의 뿌리는 훨씬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읍니다. 그런데 歷史的으로나 個人生活에있어서나 그때그때마다 十字架의 모습이 바뀌는 것 같읍니다.
現代의十字架는 무엇이겠읍니까.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戰爭原子彈 共產黨, 그러나 가장 큰 것은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性問題가 아니겠읍니까. 물론 항상 人類歷史와 함께 있는 問題이었읍니다만 全世界的인 十字架, 한 時代의 象徵으로 頭角을 나타낸 것은 現代일 것입니다.
이것은 하도 복잡 多端한 問題이기 때문에 論爭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허지만 「人口爆發」이 原子武器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고 威脅하고 나서는 것은 하나의 口實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읍니다. 그것은 事實에 立脚한 計算에서 나온 數字이겠지만 그 事實을 가지고 倫理를 破壞하는 口實을 삼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石炭이나 石油도 그 量이 無盡藏이 아니라는 事實도 우리는 알고 있으며 地球의 熱도 冷却되어간다는 것도 事實일 것입니다. 그보다도 우리가 하루살고나면 그만치 壽命을 소모하고 있다는 것도 嚴然한 事實이 아니겠읍니까. 來日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면 地球의 熱이 식어가니 멋대로 살아보자는 생각도 賢明한 생각은 아닙니다. 그것은 口實일뿐입니다.
經濟界의 均衡이 약간 잘못되면 「인프레」다 「데프레」다 恐慌이다 不景氣다하여 市民生活에 莫大한 皆痛을 가져오지 않읍니까. 性問題는 그것과 比較할 수도 없을 만큼- 萬若에 그 秩序가 흔들린다면- 決定的인 混亂과 苦痛을 免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産兒問題」는 醫學의 문제라고도 하지만 獸醫學이면 몰라도 人間의 生命에 關係되는 醫學이라면 「人間」이 더 優位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生命만 鎭重하고 보이지 않는 生命은 몰라본다면 모순이고 非科學的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밖에 갚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眞理가 多數決에 의한 것이 아닌것 같이 眞理는 여러 사람의 입으로 떠들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敎皇 바오로 6世는 全世紀를 相對로 眞理를 擁護하고 계십니다. 마치 갈릴레오가 萬人을 向해서 地動說을 主張한 것과 같이.
朴甲成(西江大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