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聞可知의 숱한 사연이 되살아 남직도 한 秋夜라 밤깊어 문득 뜰에 내려서면 장독 모퉁이 모퉁이에서 벌레들의 합창이 수런수런 익어간다. 쟁반에 유리알 굴리듯 높고 낭낭하고 투명한 音色을 가진 「파트」가 있는가 하면, 시종 쇠를 긁는 듯한 건조하고 써걸써걸한 금속 음도 있고 고장난 「기타」 絃처럼 不安定한 反音의 妙味를 낮고 무겁게 울리는 音도 있고, 부인네들이 「히스테릴」를 부려댈 때처럼 높고 빠르고 깐깐한 목청을 야무지게 發聲시키는 놈도 있다. 그러나 묘한 것은 이따금 다른 「파트」는 다 휴식하고 「소프라노」의 그 낭낭한 노래만 들릴 때가 있는데 맑고 아름답긴 하나 극히 단조로와서 적어도 풍성한 調和味 같은 것은 喪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크든 작든 인간의 집단도 이와 마찬가지다. 제각기 다른 個性을 가지고 있는 한 集團의 구성원은 各者가 各地의 그런 個性내지 自由를 십분 존중하는 成熟人들인한 그것이 동시에 어울리게 될 때는 각 個性이 다르면 다를수록 調和의 폭은 그만큼 더 넓어지기 마련일 것이다. ▲가톨릭人들을 或者는 小心하다하고 或者는 我執투성이인 교만에 차있다고들 評한다. 특히 某 큰가톨릭 단체의 예를 들어 그 우두머리가 너무도 어마어마한 權城主義 냄새를 풍기며 君臨해 있다고 비방하면서 그것이 가톨릭特有의 분위기로만 생각되어 도시入敎할 마음이 없어진다는 사람들도 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다른 사람이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 적이 있거니와 현대와 같은 個性난만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태도야 말로 가장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음산한 主從의 관계, 그것은 이미 前時代의 낡은 유물에 불과할 뿐 아니라, 가톨릭단체이면 일수록 무엇보다 먼저 止揚하지 않으면 안될 유물인 것이다. ▲燈前萬里心의 季節이라 우리 모두는 각자가 처해있는 위치를 살펴보고 한번 깊이 內省의 시간을 가져봐야 할 것이다. 윗사람은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은 아랫사람으로서, 각자가 진정한 가톨릭적인 自己完成에 대해 보다 심각한 관심을 기울일 때 「오쏘리티」만으로 끌어가려는 지도방식 따윈 절로 死滅할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