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葬이란 말은 生사람을 미리 葬禮를 지낸다는 것이다. 늙고 病든 父母를 지게에 얹어서 山中 숲속에 가져다 내버리는 것이니 無慘한 짓이다. 이 葬法은 高句麗時代에 盛行하였다 하지만 사람을 萬物의 靈長이라 일컬음이 善惡을 가리고 是非를 옳게 判斷함에 있다면 高句麗때 우리의 先人들은 어째서 그런짓을 감행했을까. 筆者는 그것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高麗葬이 高句麗를 合하여 三國을 統一한 高麗朝에 이르러서 그 자취가 사라진데 대하여 한마디 하자는 것이다.
어느집에 三代가 살았다. 家長을 中心으로 위로는 늙으신 어머니가 계씨고 아래로는 장성한 아들이 있었다. 病들어 누은 老母는 高麗葬감이다.
어느날 그는 老母를 지게에 얹어서 지고 젊은 아들과 함께 山으로 갔다. 으슥한 숲속에 던져버리자는 것읻다. 숲속 편한 자리를 골라서 앉히고 數日동안 먹을 음식을 놓아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葬禮를 지내고 돌아설 때이다.
젊은 아들이 지게를 짊어진다.
父 『아니 그 지게는 왜 짊어지느냐?』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었다. 高麗葬때 산屍體를 져다가 버린 지게는 다시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父 『어서 버리구 가자』
아버지는 소리를 쳤다. 그러나 아들은 듣지 않는다.
子 『또 쓸텐데 버리구 가요?』
아들의 對答은 엉뚱하다.
父 『또 쓰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아버지는 물었다.
子 『얼마 안가서 아버지도 늙으시면 제가 져다가 버릴텐데 두었다가 그때 써야죠』
이 소리를 듣고 아버지는 아찔했다.
父 『얘! 너희 할머니 도루 모시구 가자. 子孫된 도리가 아닌성 싶다.』
이래서 高麗葬은 없어졌다고 한다.
어머니는 갖다버리려 했지만 자기도 自己 아들에게 버림을 받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던가 보다.
子息에게 孝를 받고 공대를 받으려면 自己가 먼저 子息 보는데 父母를 공양하고 順命하는 것이 活敎訓이요 順理일줄 안다. 自己는 不孝를 하면서 子息더러만 順命해라 아무리 외친들 通할리가 없다. 自己가 먼저 윗사람에게 順命하는 美德을 나타내야 自己 아래삿람도 따라서 공손하게 마련이다. 部長이 課長 보는데 社長에게 不遜하면 課長은 따라서 部長 앞에 不遜한다.
이것을 일컬어 亂場판이라고 한다. 좁은 所見으로 혼자 잘난체 하다가는 亂場판을 벌이는 어리서음을 후회하기 쉽다. 어찌 두렵지 않으랴.
李瑞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