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齋라고 부르면 좀 뻔뻔스러울 것 같다. 겨우 한평 반의 넓이인데 한쪽벽에 책장 · 창 앞에는 文房具, 筆묵 등이 든 문갑이 놓였다. 문갑위에 꽃이라도 꽂아 놓았으면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다. 그위에 책이 쌓여있는 것이다. 문갑은 섬세한 자개제품이라 그 무게를 견디고 있는 것이 애처롭기조차 하나 회장실 앞에까지 책장을 들여놓고 보니 달리 도리가 없다. 그런데다가 책상이 무지하게 크다. 그 책상 위에도 스탠드 잉크병 필통 벼루집 사전류 등이 놓여있어 빈자리는 그리 넉넉지 않다. 그러므로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모로 걸어야만 책상 앞에 앉게되지만 책상을 작은 것으로 바꿀 마음은 나지 않는다. 하여튼 소연하기 이를데 없다. 그대로 이방을 처음 만들었을때는 흥분하여 며칠 잠을 자지 못했다. 그전에는 나를 위한 서재라는 것이 없었다. 글을 쓸때면 상을 방에 들여놓고 반침 속에 챙겨두었던 원고지를 꺼내어 썼다. 식사때가 되면 부엌 아주머니가 『상내주세요』 하며 상을 뺏아간다. 모처럼 있었던 감흥이 삭막하게 흩어지는 것은 내 모자란 역량 탓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참다못해 옛날에 麻雀상으로 스던 화류테이블을 들여놓고 책상으로 쓰기시작했다. 한결 편리하고 우선 잉크랑 원고지를 쓸때마다 ㄲ ㅡ집어 내지 않아도 좋아 그것만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말타면 경마잡히고 싶다던가 이 보기만은 훌륭한 화류상도 얼마안가서 책상으로는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엄격히 말하면 책상탓이 아니고 방이 말썽이었던 것이다. 그리 넓지 않은 방이고 보니 손님이 오시면 앉을 자리가 없고 어쩌다 생일날이라든가 무슨 모임이 있으면 책상을 치워야 한다. 거기다가 책상을 바로 놓은채 치울 장소도 없어 책상위에 얹었던 책이랑 메모랑 쓰다둔 원고가 뒤죽박죽으로 처리되어 모처럼 애써 적어두었던 資料같은 것이 없어지곤 하여 미칠것만 같았다. 서재를 갖고싶다…이것은 줄곧 버릴 수 없는 소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궁리를 해도 좁은 대지에 방을 들일 공터라곤 없어 거의 단념하고 있었는데 3年전 어느날 뒷문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나가보니 낯선 사람이 서서 충청도서 왔다 한다. 문을 좀 열어달라기에 『그문은 쓰지 않아요 대문으로 오세요』하고 그말이 남의 말처럼 처음 드는 것 같은 느낌에 스스로 놀랐다.
그남밤 『그문은 쓰지 않아요』하던 자기말이 자꾸만 떠올라 되풀이되는 동안 『그문은 필요없어요』로 변했다.
얼마후 이 뒷문 자리에 한평반짜리 방이 세워지고 이것이 나의 「서재」가 되었다. 얼른보아 _庫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 서재를 나는 사랑한다. 소연해 보이지만 이방에는 雰圍氣가 있다. 천정 가까운 곳에는 p 神父님이 주신 아주 정교한 작은 고상이 걸리고 내가 가장 아끼는 「엘 그레꼬」의 성모상이 「마드리이드」에서 산 조각이 있는 하얀틀에 들어걸려있다.
책이 쌓여있지 않는 벽엔 하자의 文人畵가 대련으로 걸렸다. 내 작은 몸이 간신히 놓일만큼밖에 빈자리라곤 없지만 나는 책상앞에 앉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여름에 숨막힐듯 더웠던 그 더위만큼 겨울의 이방은 춥다. 한참 앉아있노라면 손끝이 저려 그것이 글을 많이 쓰지 않게 되는 구실을 만든다. 주부인만큼 부엌과 너무 떨어져 있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나는 어느덧 사랑하는 이 방에도 만족을 못하게 되었나부다. 책을 쌓아 놓지 않고 꽂아둘 수 있는 책장을 더 놓을 수 있고 모로걷지않아도 책상앞에 갈 수 있고 메모한 쪽지를 넉넉하게 둘 수 있는 文庫함 같은 것을 놓을 수도 있으며 여름이면 창을 열 수 있고(창은 쌓올린 책으로 가리워져 방안은 어둡다) 겨울이면 따뜻한 방을 하나 갖고 싶다. 꼭 갖고싶다.
한무숙(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