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이야기해서 나의 책방은 오래 묵어내린 雜木林같은 책의 숲속이다. 書齋라기 보다는 이러한 아담한 作業室이다.
나는 學者도 아니며, 무슨 硏究家도 아니다. 다만 외진인생의 길손이다 나그네다. 나에게 배정된 時間을 여행하고 있는 旅行者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항상 出發과 宿泊이 끊임없이 계속 되는 장소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場所에서 나는 무언지 항상 바쁘다. 그러기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서저들을 꼬박꼬박 정리를 할 짬이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두어버리지는 않는다. 내가 작업을 할 때, 그 서적이 꼭 필요할 때 찾고 싶을 때 손쉽게 끄집어 낼 수 있게끔 즈 자리를 정해두곤 한다. 이렇게 쌓아논 책들이 가득히 모여있는 한구석에서 작업을 할때, 나는 흐뭇한 숲속에서 獨居하고 있는 安定感을 느끼곤 한다.
나는 이러한 整理되어 있지 않은 내 책방, 書齋 아닌 내 書齋, 책들의 雜木林을 사랑한다. 마침내 깊은 思索家가 숲을 사랑하듯이.
나는 나의 이 서적의 숲속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어디에 개울이 흐르고 어디에 샘이 있고 어디에 고목이 있고 어디에 어떤 새의 둥우리가 있고 어디에 어느 오솔길이 있고 어디에 어느 꽃이 피어 있고, 어디에 어느 짐승의 굴이 되어 있고, 집이 있고, 똥이 있는가를. 또한 어느 계절에 어느 새가 날아드나를. 때문에 나는 내 숲을 나만이 드나들고 나만이 관리를 한다. 「흥트러진 그 秩序」를 나는 사랑하기 때문이고, 그 속에 가득히 들어 배있는 나의 냄새. 나의 비밀, 나의 흔적을 남이 알길 싫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방의 청소를 그리 하질 않는다. 한다하더라도 먼질 털고 쓸 정도로 한다.
이방엔 벽난로가 있고 양주가 있고, 골통담배가 있고, 그럭저럭 쓸만한 「파이프」가 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에 쓰던 창이 있고, 승마하던 시절의 묵은 長靴가 있고 高師시절의 「럭비」部 部旗가 구멍난채 보관이 되어있다. 그리고 군데군데 친구들의 그림들이 옛정 그대로 걸려있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님의 사진, 국제회의에 참석한 기록의 사진들이 뛰엄 서가에 놓여져 있다.
창은 동쪽에 있고, 서남쪽에 있어 해빛에 그리 부족함이 없다.
방은 마루방이다. 수난로가 들어와 있어 온도조절도 비교적 잘되는 이층 구석진 방이다.
방문 밖 작은 복도는 주로 월간잡지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白雲無言」(劍如 柳熙綱 兄 글씨)이라는 족자가 걸려있다.
이러한 한적한 골목책방에서 나는 나의 인생여행을 기록하고 정리하고 떠나는 연습을 한다.
먼저 이야기한 것처럼 나의 書齋는 書齋아닌 雜木林이다. 잡초와 잡목들로 가득한 人跡 흐미한 나의 棲息地이다. 그리 귀중한 것들이 없는대로 그저 그대로 짤막한 인생을 보낼 수 있는 장소이다. 때로 밤 열한시 열두시 길 잃은 술 벗들이 찾아들면 양주 몇잔과 골통담배 몇모금 물며 허허 웃을 수 있는 고요한 구석이다.
6·25 이전의 책방은 동란통에 없어져 버리고 이렇게 또 한 棲息處가 마련되었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불길한 예감 없지도 않다.
趙炳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