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신자들은 「모든 성인의 날」을 계절의 탓인지 감상적인 축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또한 옛날부터 이날 오후 묘지를 방문하여 위령하는 신심을 행한 탓도 있으리라. 「모든 성인의 날」과 「위령의 날」을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또 어떤 경우 적당치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목은 「모든 성인의 날」의 본 목적을 뚜렷이 하고 또 교회의 정신에서 이날을 축하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사실 「모든 성인의 날」은 「위령의 날」보다 그 제정에 있어 5백년이 앞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위령의 날」은 오히려 모든 성인의 날」의 기쁨에서 빛나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즐거운 축일인 「모든 성인의 날」은 낙원의 축일이요, 구원된 인류의 축일이며 영광의 축일이요, 교회의 개선일이다. 이날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씻긴 거룩하고 하자없는 新婦처럼 나타난다. 또 이날은 肢體로서의 그리스도의 개선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탄생하여 죽으셨다가 영광 중에 들어가셨다. 당연하다. 그의 肢體도 그를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날은 그 효과있는 성공을 축하하는 날이다. 무슨 성공일까? 오늘 미사의 독서에서 사방에서 온 헤아릴 수없는 무리를 이루는 간선자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복음은 이 성공의 비결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즉 천국은 이 지상에서 성공한 부한자 행운자 탐욕자 난폭한 자들에게 열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가난하고 양순하고 상처를 입은 자들에게 열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하느님의 성인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우리는 신비체의 지체인 성인들을 통해 머리이신 구세주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려보낸다. 또 이날은 교회헌장 제5장에서 말하는 聖性에로 불린 우리의 축일이다. 우리에게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해야 한다는 우리의 소명을 상기시키기 위해 이날보다 더 좋은 축일이 없다. 여기 그 성공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날은 또한 通功의 축일이다. 같은 축일에 모든 성인을 축하함으로 우리는 그 일치를 축하한다. 한 主님, 한 신앙, 한 성세가 있을 뿐이다. 같은 사랑으로 같은 교회 안에서 그들을 서로가 그리스도의 한 몸처럼 살게하는 것이 이 通功이다. 이런 것이 이 축일의 요소적인 몇가지 主題이다.
우리는 이 축일의 비사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노력하자. 그러면 이날 오후부터 위령하는 전통적인 신심을 없애는 것이 좋을까? 새전례에 의하면 옛날 「모든 성인의 날」의 제2만과경 후에 이어 바쳤던 위령을 위한 만과경과 종과경을 오늘에 와서는 다음의 「위령의 날」로 이동시켰다. 물론 11월 2일의 「위령의 날」의 말씀의 전례를 전날에 할 수도 있다. 또 전날에 죽은 이를 생각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교회는 「위령의 날」에 하느님이 이 세상을 떠난 우리의 知人·사랑하는 자들을 당신의 왕국에 받아들이도록 특히 기도할 것을 바라고 있다. 이 기도가 참되기 위해 주께서 우리에게 죽음의 비사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발견토록 하자. 이 비사 앞에 우리는 主님께 대한 우리의 희망을 두기 때문이다. 이날 무덤을 방문하고 무덤의 뜻을 상기함도 좋으며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도 부활해야 한다는 신앙을 되살릴 것이다. 이날에는 또한 무덤 축성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