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 일요일 밤9시 「프로」인 「내일에 산다」를 反射鏡子는 종종 듣는다. 이 「프로」가 작년까지만도 「절망은 없다」란 이름으로 방송된 것으로 안다. 「절망은 없다.」 보단 「내일에 산다」가 더 희망적인 것 같다. 「프로」 이름을 바꾼 이유도 그것인지 모르겠다. 아뭏든 이 두 이름이 무척 종교적이고 갖은 고난의 삶들을 들려준다. ▲오늘날 무신론자들이 항변하듯 무지와 빈곤 · 굶주림과 부조리가 그렇게도 한국인의 생활 가운데 이 사회의 밑바탕에 골고루 도사리고 선의의 사람들까지를 괴로움에 몰고 인생을 저주케 했는지 놀랍다. 그런데 수난의 그 주인공들은 그렇게도 훌륭히 고난과 역경, 사기와 모함 · 착쥐와 시샘을 극복하고 개척자나 순교자와 꼭같은 희망과 용기로 모름지기 이겨냈다. ▲정말 장한 인생들이다. 부끄러울 뿐이다. 그들은 너무도 훌륭한 인생의 모범이요 그 「프로」는 너무도 훌륭한 종교적 교사다. 세번이나 스승을 배반한 베드로도 그들을 우러러 볼 것이다. 회의와 원망 · 고뇌와 배신을 거급하는 이름만의 우리들 「久遠의 신앙자」들에게 다시없는 교사들이다. 부끄러울뿐이다. ▲지난 42년을 선교와 사목에 이바지 하기 위해 창간된 「가톨릭시보」가 얼마만큼 교회가 바라는 인생의 등불 노릇을 했는지? 종교적 교사역할을 했는지를 오늘 「교회출판물 보급주일」을 맞아 반성해 본다. 寄與度를 셈하기에 앞서 부끄러움이 너무도 많다. 이념만 숭고했을뿐 서툴렀고 잘못도 많았고 보잘것 없는 것으로 독자들의 상만 찌푸리게 하여 귀중한 교회재산을 낭비만 한 것 같다. 신앙을 흔들고 반복과 샘만 촉발시키고… ▲과거를 되씹고 반성을 게으르지 않은대서 오히려 존경을 받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신앙에서 「반성」과 「뉘우침」을 빼면 남을 것이 없다. 그리하여 지난 2년은 이 반성을 좀 심하게 촉구하여 오히려 「위기」를 초래케 한듯한 급박한 사정에까지 이르게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잘못했는가? 아니면 그만큼의 반성을 촉구할만한 일들이 있었던가? 이것을 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일 것 같다. 금년 출판물보급주일의 첫째 의의를 이것을 밝히는 것으로 삼았으면 한다. 한국교회 출판물이 60년 혹은 40년을 「고군분투」하고 「칠전팔기」해온 사실도 셈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