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광범한 전달과 생활화가 교회 모든 활동의 지상 목표요 최대의 사명이라 할진대 그 전달수단인 「매스콤」을 최대한 이용해야 함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이점에 있어 한국교회는 지상 최대의 후진국임을 자인해야 할 것이며 세계 다른 지역의 교회에 멀리 낙후되어 있음을 깊이 반성해야 하겠다.
「매스콤」의 가장 기초적이요 초보적인 출판물이며 정기간행물에 있어서도 우리의 교회간행물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극히 빈약하다. 이렇게 빈약한 출판물도 읽어주는 사람마저 없다. 한국신자들은 책을 읽지 않는 더 쉽게 말하면 무식한, 천주도 교회도 모르고 말로만 믿는 신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더욱더 많이 더욱더 깊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과 믿음을 결국 자기신앙에 대한 무관심을 증명하는 것이요 또 무관심은 사랑도 믿음도 없는 냉담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 한국의 교회출판물 보급부진을 초래한 그 최대의 원인은 신자들이 독서를 하지않는데에 있고 신자들의 교회에 대한 무관심과 냉담에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마저 우리는 제2차적인 책임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교회출판물 보급부진의 깊은 원인, 즉 그1차적인 책임은 적어도 우리 한국교회에 있어서만은 일반신자보다 오히려 교회지도자인 주교신부들을 포함한 지도급에 속하는 지식층 신자들에 있다고 솔직하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복음전달의 수단에 관하여 너무 무관심했고 여기에 대한 연구도 조사도 또 관심마저도 없다. 교회출판물이 얼마나 간행되었는지, 얼마나 읽혀졌는지, 독자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또 현대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매스 미디어」에 교회가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인지, 또 교회출판물이 소화되지 않는 원인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이런 점에 대한 조사도 숫자도 연구도 또 그 대책도 앞으로의 계획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주교회의 산하에 「매스콤」에 대한 전문위원회가 아닌 실질적인 상설기관을 두고 상임직원을 임명하여 「매스콤」에 관한 모든 문젯점을 연구입안케 하여 주교회의에 반영케 하는 길을 모색함이 시급하지 않겠는가. 가령 작년에 발족한 「저널리스트 클럽」도 이러한 연구에 관심을 두어 그 결과를 주교회의 등에 제공하는 일들을 하므로 전문가로서 그 전문지식으로 교회에 봉사하는 좋은 사업이 될 줄로 우리는 믿고있다. 교회출판물이 독자동원에 실패하고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을 우리는 동 출판물 자체의 질적인 문제에도 있다고 본다. 특히 정기간행물은 산시대 뒤 떨어진 현 사회생활에서도 멀리 유리되고 현대적인 관심과 흥미에 상응되지 않는 구태의연한 제작으로 독자에만 그 구독을 강요할 수는 없지 않는가. 현대생활은 복잡하고 다기하다. 현대인들은 천천히 조용하게 몇시간씩 안정된 독서를 즐길 수 없다. 한말로 말하면 현대인은 다분히 시각적인 출판물 즉 화보같은 것을 원한다.
깊은 이론이나 복잡한 논설같은 것 보다 단편적인 지식을 순간적으로 이해하고 싶어한다.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이러한 ㅇ구에 적응하기 위하여 최근 우리의 주변에는 그 질이나 내용에 있어 극히 치졸한 주간지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상당한 숫자의 독자들을 동원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대가 요구하는 교회화보나 화보를 겸한 주간지가 요청된다. 시정에 팔리고 있는 각종 주간지를 우리는 단순히 타락된 상업주의의 결과로만 돌려 백안시하고 개탄만하고 있을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 시대적인 요청을 우리는 직시하고 이해해야 하겠다.
가령 우리나라에 일찌기 진출하여 꾸준한 업적을 쌓고 있는 성 바오로 출판포교회 같은 수도회는 그 세계적인 조직망과 다른 나라에서의 혁혁한 업적만 보더라도 능히 이러한 좋은 주간지를 간행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고 우리는 믿고 있는 터이나 듣건대 각 교구마다의 이해관계와 적은 타산의 장벽 때문에 서울이외의 타도시에 진출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출판물에 관하여는 교구의 장벽이 있을 수 없고 적은 이해관계 따위는 초월해야 할 것이다. 동 출판포교수녀회가 계획하고 있는 방문판매 양서출판과 주선 등의 계획을 본란은 적극 찬동하며 또하나 시각적이요 신앙의 생활화와 복음의 생활화를 꾀한 주간지의 간행을 충심으로 권유하는 바이다.
「매스콤」이라 하면 우리는 곧 시대의 총아인 TV · 리다오를 교회가 직영하지 못함을 한탄하고 가톨릭 일간신문의 필요를 역설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전달수단이 복음전파에 얼마나 효과적이며 반드시 많은 경비를 들여 교회가 직영할 필요가 있늕지 한번 치밀한 계산을 해보고 이런 문제에 언급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교회가 직영하는 일간지를 가진바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던가?
또 기독교방송국이 음악 「프로」를 제외하고 그외의 설교 또는 종교 「프로」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청쥐자를 동원하고 있는가? 그리스도교 방송국 설치의 본래의 목적을 위한 청취자 획득에는 가히 실패하고 있는 실정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장에 어떤 비약적인 「매스콤」에 관한 방안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직가지는 기존한 출판물의 보급과 육성에 더 많은 관심과 힘을 기울여야 하겠다. 이러한 활동을 위하여 가톨릭필진 · 언론인 「매스 미디어」 기술자, 종사원들의 참다운 그리스도교적인 지식과 생활, 진정한 「가톨릭지식인」이 되려는 노력이 우선 시급히 요청된다는 점을 아울러 강조해 두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