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는 제2차 경제계획이란 의욕적인 정책을 내세우고 박정권의 두번째 집권기를 경제개발 위주로 내몰고 있다. 그런 뜻에서 아시아지역 사회·경제개발 위원회가 이 문제를 주제로 10월 하순 서강대학에서 개최한 연구회의 의의 또한 높이 평가하는 바이다. 막상 「제2경제」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을 때는 『그것은 철학적이라』하기도 했고 근자에 와서는 「인간개발」을 주목적으로 한다고 하기도 했다. 정책수립자들은 어떤 뚜렷한 개념을 가지고 이 「못또」를 부르짖었지만 일반국민들에겐 아직 명확안 개념이 오지를 않고 있다. 하여튼 우리가 하루빨리 후진성과 낡은 습성에서 탈피하여 남과 같이 멋지게 살아보자는 것은 국민이면 누구나 다 바라는 민족적인 염원이다.
그러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모양으로라도 잘만 살면 될까? 우리나라가 강대국만큼 부강하기만 하면 될까.
가령 공산주의국가인 소련은 확실히 우리보다 부강한 나라다. 그들은 막강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달정복의 경주를 볼만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온 세계를 위협하는 무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다른 경제적인 힘은 미루어 알만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과 같은 경제력을 가지면 우리나라는 잘되는 걸까? 문제는 경제력이 무엇을 위하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달려 있다. 문제는 좀 더 나아가서 윤리적 종교적 문제와 결부된다. 경제부흥과 윤리 또는 종교를 결부시키자면 사회정의와 인간개발문제로 귀결된다.
넓직한 큰 길이 시원하고 편리하게 온 나라를 거미줄처럼 돌려놓는다 해도 잘사는 사람만 점점 더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욱더 가난하게 되는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의 기현상이 있는 한 인간의 진정한 개발은 있을 수 없다. 가기 분수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모든 사람이 자기 사회에서 제 권익을 정당하게 찾아야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존재이다. 살아있기에 머물러있지 않고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고 있기에 간단없이 변해간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완성이라는 본연의 목표를 향해서 계속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동물은 삶의 움직임을 계속하다 보면 죽고 말지만 인간은 삶의 운동을 계속하면서 자기완성에로 진보하고 문화를 형성한다. 이와 같은 뜻에서 인간은 문화를 창조하는 숭고한 사명을 띠었다고 한다. 「잘살아보자」는 우리의 염원을 실현시키는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류문화의 두 발상지요, 인간지혜의 두 원천인 희랍과 중국은 인간을 사회적인 테두리 속에 넣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희랍사람들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했고 중국사람들은 5대 인간관계(五倫)에서 인간의 개념을 잡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기완성을 향한 개발은 사회발전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모든 발전은 질서유지를 바탕으로 한다. 질서유지가 각 개인의 공동목표 또는 공동선을 위하여 잘 유지될 때 사회전체의 복지와 개인의 행복이 뒤따른다. 질서가 유지될 때 경제발전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오래간다. 『가난이 싸움 붙인다』하지만 반대로 싸움하지 않아야 잘산다. 사회정의란 바로 이 질서유지를 말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정당한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백년대계」는 근시안적 이기주의적 추구가 아닌 「공동선」을 향한 것이라야 하고 공업화·근대화는 목적이 아니고 「인간개발」의 방편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