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形外科에 手術을 받으러오는 女性들은 대개가 美女들이라고 합니다. 아마 美人일수록 樊에 대해서 더욱 關心과 慾望을 가지는 모양입니다. 이것은 딴分野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權力에 있어서 그렇고 財物에 있어서 그렇고 知識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가지 慾望中에서 가장 큰 것은 「사랑」에 대한 慾望이라고 하겠읍니다. 왜냐하면 모든 慾望은 참된 「사랑」 하나로 위로歸著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人間은 모든 慾望때문에 번뇌가 생기고 不幸이 있다고 생각하는 佛敎의 原理도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慾望은 不幸과 번뇌의 根源이기도 하지만 幸福과 歐喜의 源泉이기도 합니다. 慾望을 否定하고 自然을 否定하고 따라서 文化를 否定하여 厭世와 虛無로 向하지않고 慾望과 自然과 文化를 肯定하며 歡喜와 存在로 向하는 것이 그리스도敎的인 態度라고 보겠읍니다. 그런데 現在 우리는 半조각 밖에 없는 世界에 살고 있읍니다.
人間없는 自然속에 自然없는 機械속에 「사랑」없는 本能속에 살고 있읍니다. 하늘은 없고 땅만 있는 世界에 살고 있읍니다. 두더지 같은 生活입니다. 두더지는 水平線도 地平線도 안보입니다. 그저 눈앞을 파헤치기만 하는 것입니다. 두더지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파헤치고 分析하고 綜合해도 땅꿀같은 것 밖에는 構成하지 못할 것입니다. 두더지에게 가장 슬픈 것은 날개가 없다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들 現代人에게 있어서 가장 슬픈 것은 「사랑」을 喪失했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랑」은 人間에게 날개 같은 것이 아니겠읍니까. 「天主의 모상」을 따라서 人間이 創造된 것이라면 바로 이 「사랑」이 「天主의 모상」이 아닌가 합니다.
現代人은 이 「사랑」을 여러가지로 變質시키고 있읍니다. 本能的인 사랑, 非人格的인 사랑, 功利的인 사랑 等 여러 모습으로 分散시켜서 「사랑」의 破片에다 여러가지 이름을 붙이고 있읍니다. 그러나 모든 「에너지」가 結局은 하나인 것처럼 「사랑」도 結局은 하나입니다. 모든 「에너지」는 한군데로 集結시켜야 「에너지」 구실을 하는 것처럼 「사랑」도 하나로 集中되어야 모순없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파헤치고 분석하고 利用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神秘의 門』이라고 합니다. 파헤치면 신비는 사라집니다. 神秘없는 곳에는 「사랑」도 없읍니다. 그런데 이 「神秘의 門」은 「순결」로 쌓아올린 門입니다. 또한 순결은 마음의 눈(眼) 같은 것입니다. 눈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朴甲成(西江大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