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발걸음이 미치는 곳에 無秩序한 거리의 풍경을 본다. 서울의 交通事情이 어떠하다는 것을 새삼스러이 말해둘 필요조차 없는 것이지만 이 복잡스런 교통을 다소나마 덜어주기 위해서 市當局 마련해 놓은 制度마저 제대로 利用할 줄 모르는 市民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할 때 서글프기 짝이 없다.
버스 기다리기가 지루하고 또 기다리던 버스를 타기가 殺人이나 빚어낸듯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딴에는 좀 理한 점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그것을 무릅쓰고 택시를 잡으려 달려갔다.
웬걸 여기에도 혼란한 現場은 마찬가지일 때가 많으니 交通의 自由마저 빼앗기고 살아야 할 세상이니 어찌 딱하지 않겠는가.
市가 얼마전 택시의 설곳을 따로 정해 놓고 게다가 철책(鐵책)까지 쳐서 줄서는 아궁이를 만들어놓아 보는 이로 하여금 이제 잘되어간다는 흐뭇한 希望을 안겨주기 멀지 않아서 이놈의 세상은 어찌되어먹는지 그런 팻목을 꽂아놓는대도 그것이 있으나마나 아예 외면하고 택시가 오면 서로 앞다퉈 타기가 바쁜 것이니 그때의 꼴들은 마치돼지들이 놀라서 정신없이 우리 밖을 뛰어나와 빙빙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할 수 있고 굴레벗은 송아지들이 외양깐을 들락날락하면서 닥치는 대로 마구 뒷발질하는 광경과 같다하겠다.
참으로 한심스럽고 불쌍한 사람들. 앞뒤를 이렇듯 가릴줄 모르는 이들이 어떻게들 淑女紳士들이 갖추어야할 머리들은 말끔히 따듬고 나돌아 다닐 수 있겠고, 그들이 입어야할 옷자락은 버젓이 걸치고, 다니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너무나 不調理해서 짐작이 쉽게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이 세상은 이렇게 앞뒤 없이 서로 다투어 사는 것이 보통인가.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못사는 법인가. 갈길이 바쁘니 그럴 수 있겠지만 이렇게 하는 것을 예사로 여기는 秩序에 대한 不感症은 이 사회의 福祉를 밑으로부터 두들겨 깨고 파헤치는 病중의 병이 아닐 수 없다.
흔히 交通秩序를 모든 질서의 상징으로 손꼽기가 일쑤인데. 교통질서가 이러하니.
그밖에 다른 질서는 어떠하겠는지 들어보지 않아도 뻔한 노릇이다.
權寧百(東亞日報 論說委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