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事에 愼重을 期하면 낭패는 없다. 그러나 그 愼重이 지나치면 어름거리는 愚擧를 免치 못한다. 여기에 현명한 判斷이 必要한 것이다.
火가 난다고 當場에 火풀이를 하게되면 輕擧妄動이요, 憤하다고 지나친 興奮을 하면 도리어 非難을 받게된다.
더욱이 宗敎界에 있어서의 是非論難은 지극한 조심이 있어야 한다. 萬一에 前後를 헤아리지 않고 直情 그대로 發露할때 그 영향은 지극히 클때가 있다. 그것도 敎內에서 끝나는 일 같으면 모르거니와 그 言動이 一般社會에 미치는 경우 그야말로 큰 問題이다. 어느 家庭에서든지 부모는 子女의 잘못을 꾸짖고 바로잡아주며 子女는 부모의 옳지 않음을 指摘하고 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大門 안에서 行하고마는 일이지 門外에까지 알려지지는 않는다.
한 家庭에서도 이러하거니와 良心으로 바탕을 삼고 善行을 崇尙하며 社會의 師表가 되어야 할 거룩한 敎會에서 조금이라고 不和한 所聞이 새어나간다는 것은 至極히 유감된 일이다. 上司나 指導者를 걸어서 告訴까지 하는 요즈음인지라, 그런 風道가 敎會內에까지 波及된다면 이것은 至極히 寒心한 일이요 恥部를 드러내는 愚擧가 아닐 수 없다. 建設的이니, 正當한 主張이니, 아무런 事由를 늘어놓는다 해도 沒知覺한 所行임을 어찌하랴. 사람에게는 한두가지의 缺点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렇기에 그것을 감싸고 덜어버리려는 努力의 뒷받침없이는 完_은 期할 수 없는 것이다. 人間이란 누구나, 나는 完全無缺하다고 큰소리 칠수는 없는것, 他人의 잘못만을 들추는 것은 至極히 不純하다고 본다.
요즈음 어느 宗敎界에든지 크고 작고 間에 말성거리가 잇달아 일어나고, 下剋上의 不祥事가 끊이지 않는다. 勿論 잘못은 고쳐야 하고 잘못을 잘못으로 생각지 않는다면 覺醒도 있을 法하고 陳情도 함즉하다. 그러나 操心性없이 마구 대들거나 함부로 떠드는 類의 態度는 보다더 큰 損失을 본다는 것을 妄却한 行動이요 나아가서는 그 累를 여러사람에게 끼치는 失手가 아닐 수 없다. 俗談에 小貪大失이라는 말이있다. 명심할바 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愼重한 사람의 德이 아쉽기도 한것. 참고 기다리는 것을 용劣하다고만 일컫지 말고 머나먼 里程表 앞에서 한숨쉬고 가는 나그네의 끈덕진 旅路를 本받으면 언젠가는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 아닐까. 事必歸正이라는 格言이 이런때 그 빛을 發하는가 싶다. (끝)
李瑞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