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천주의 은혜로써 얻은 약7백평의 松林이 하나있다. 나는 그것을 『恩松林』이라고 이름 지었다. 恩松林에는 음력 正月 모진 추위에 눈이 나려도 제일먼저 녹아버린다. 地上에 내린 主의 은총이 어느 곳으로도 消失될 수 없이 그대로 깃들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곳- 거기가 바로 恩松林이다. 또 거기에서는 밤낮 할 것 없이 『샤아아-샤아아-』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다. 흡사 海潮音이다. 아아! 나는 벌써 몇번이나 솔바람소리를 海潮音과 혼동, 착각하였던고! 이 恩松林 한가운데에 나는 땅을 깊이 파고 거기에다 亡妻 「안나」를 묻어 주었다.
그리고는 무덤 옆에 巨大한 돌을 깎아 「안나」의 이름을 새겨 둔 것이다.
이 돌은 江華島까지 가서 운반해온 三千廳에 가까운 巨石이다. 이 둘에다 이름을 새기고 큰 보리이삭 하나를 彫刻하는 10여일 동안 나는 石工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깊게 아주 깊게 파라!』고 나는 그들에게 돈을 주며 격려하였던 것이다. 나는 실로 돈이 없으면서도 돈의 무서움을 모르는 무서움을 모르는 미친 勇者로 化해 버려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갖고 그 移植을 위해 銀行으로 官廳으로 企業體의 사무실로 찾아다닐 때, 나는 작업복 차림으로 庭園師를 데리고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값비싼 觀賞木을 사모았다. 樹齡 50年 이상의 巨樹로서 아름다운 것만을 골라서 샀다. 나무는 향나무, 벚꽃나무, 百日紅, 단풍 등인데 移植에 소요된 人夫의 수만도 연2백名이상이었다.
『어린 苗木을 심어라』고 주의의 사람들이 충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아무 말도 듣지 않는 외고집 장이가 되어 있었다. 이리하여 나는 빈약한 나의 才力을 아낌없이 소모하고서 天主의 恩松林을 꾸몄던 것이다. 매일처럼 恩松林에 가보는 것이 나의 최상의 樂이었다. 물을 주고 가지를 짜르며 나는 旱天 8月의 긴 나나을 보냈다. 『恩松林엔 이젠 가지마라』 또 주위의 친우들이 걱정하며 떠들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해명하였다.
『여태까지 人間은 그것이 자기의 번영의 길인 줄 알고 무정하게 森林을 파괴해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번영과는 正反하는 파멸의 길이었다. 森林의 존재는 이제 文明의 방해물이 아니다. 나는 7백평의 森林을 가꾸려가네. 아니 천만에! 「안나」 때문에 가는 건 아닐세. 그건 아닐세⋯』하며.
朴熙永(外大英文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