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탄압에 맨주먹으로 항거하여 인류사상 유례없는 학살과 민족말살의 박해를 받은 기미독립운동이 난지 50주년에 해당한다. 3·1절이 되면 으레 뒤따르는 생각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중 천주교신자가 한명도 참가하지 못한 사실이다. 이것은 정말 하나의 우연한 탈락인지 소외인지 아니면 정말 천주교신자는 민족의식이 어떤 다른 종교인들보다 근본적으로 희박한 증거인지, 뜻있는 이의 회의거리가 아닐 수 없다. Y신부님의 「기미운동과 가톨릭교회(本號 4面)」란 내용에서처럼 당시 교우들은 『체살의 것은 체살에게』란 원리를 일방적으로 고수하여 철저히 정치를 외면한 결과일까? 그들은 개인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내세를 희구한 나머지 민족적 현실을 외면하는 현실부정의 초연지기에 잠겨 있었을까? ▲믿을 교리 첫장 첫절에 사람은 세상에 자기영혼을 구하고 천주를 공경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되어있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없는 진리다. 그러나 자기 영혼의구원과 他를 위한 자기포기는 상반되는 원리가 아니며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역설적이고도 본질적 원리인 것이다. 실상 애국심이란 그 민족이면 누구나가 다 가져야 할 기본적 양심이 아닐까? 단지 이 양심을 어떻게 행동화 하느냐 혹은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느냐 라는 것은 어느정도 개인의 소양과 자유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영적 이득이란 공리적인 신앙에 얽매여 민족의 위기를 외면한다면 이것은 이미 인간적인 의무를 저버림과 동시 그리스도의 근본정신에도 위배된 것이라 본다. ▲ 그러나 단지 33인중 공교로이 천주교신자가 없다는 이 사실만으로 전체 신자가 비애국적이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사실 그당시 우리 동포중 애국자 아닌 사람이 있었을까? 누구나 우국충절에 불탄나머지 왜적의 총칼에 용감히 대항하여 피흘렸으며 차라리 청사에 이름없는 숨은 꽃들이 얼마나 뒷그늘에서 스러져갔으며 그중에 누가 기독교신자며, 누가 불교신자며, 천도교며를 가릴 것이며, 그들은 신앙과 계급과 빈부를 초월하여 뜨거운 형제애로 뭉쳤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오랜 박해동안 신앙을 위해 목숨바친 이름없는 우리교회의 무수한 순교자들의 전철을 보아서도 가톨릭신자만이 義를 저버리고 자기목숨 보존에만 급급했다고 할 수 있을까? 당시나 현대에 있어서나 올바른 신앙적 양심에 입각한다면 그리스도신자는 누구보다도 이웃을 위해 민족 · 국가를 위해 자기를 버릴 용기와 죽음을 결단할 수 있는 자다. 그들은 목숨을 잃는 자 목숨을 얻고 밀알 하나이 썩어 몇십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기독교적 사랑의 원천에서 인간적인 힘을 초월한 용기를 얻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