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구원을 위해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을 위해 복되고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배려는 우리에게 구원의 완성이신 독생성자를 주시고 성자의 사람되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다시 오심을 더욱 잘 알리고저 성서를 주셨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다 이, 복되고 기쁜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하느님의 참사랑의 뜻을 알아듣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의 새생명을 얻어 누려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독생성자를 어떤 특수민족만을 위해 주시지 않은 것처럼 이 기쁜 소식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주셨고 또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장 평범한 인간의 말로 전해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가장 보편적이고 영원한 것이다.
하늘과 땅이 변할지라도 이 복된 소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는 시대와 환경, 조건에 따라 쉴새없이 변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인간적 어려움이 있고 이 어려움을 타개하고저 계속적으로 노력해야만 된다. 교회는 이 어려움을 타개코저 노력했으나 변천된 인간의 표현을 너무나 경시했으므로 하느님의 말씀이 잘 전해지지 못하게 한 결과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바티깐」 공의회를 전후하여 전반적인 쇄신을 목표로 하고 또한 하느님의 말씀이 모든 민족에게 보다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음은 당연한일이나 또한 극히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전체적인 움직임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그 혜택을 입고 있는 흔적이 역역하다.
우리는 이런 전례적인 움직임에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는 획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결코 낙오되어서는 않될 것이다.
이러한 때에 가톨릭·프로테스탄트의 성서공동번역위원회가 시급히 신약성서를 공동으로 번역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 함께 경하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이런 선의의 노력에는 반드시 하느님의 축복과 가호가 있을 것이다. 이 공동번역사업은 얼핏 보기에는 간단하고 쉬운일 같으나 그 사업의 중대성을 직시할 때 결코 쉬운 일도 간단한 일도 아니며 거기에는 허다한 애로가 있을 줄 짐작된다.
이제 가톨릭·프로테스탄트 성서공동번역위원회는 12월 중순부터 번역사업을 시작하여 빠른 시일 내에 완료하기로 다짐하였다고한다.
따라서 전문위원들의 적절한 준비와 각오가 있을줄 믿으며 우리의 관심과 기대도 지대하다. 우리의 관심과 기대의 표현으로써 외람할지모르나 몇가지 충언을 하고 싶다. 첫째, 희랍원문에서 직접 번역한다는 대원칙을 세우고 고수해주기 바란다. 신약정전의 번역이므로 결코 신약요해나 설화의 엮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로 원문원칙에 입각해서 「텍스트」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을 선택해 주기 바란다.
이것은 올바른 번역의 관건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고 보겠다. 따라서 심사숙고한 연후에 충분한 합의를 보고 공동으로 선택해야 할 줄 믿는다. 종전에 쓰던 성 예로니모의 「라띤어」의 「불가타」역이나 제 나름대로 원문에 충실하였다는 구미 각국어의 번역을 번역 「텍스트」로 선정한다면 새번역의 의의나 가치를 잃고 말 것이다. 우견으로서는 좀 부족한 감이 없지는 않으나 티쉔도르프나 폰·소덴의 비판된 「텍스트」를 참고로 하고 「로마」「예로니모」 수도원에서 발간되고 있는 비판대조된 신약성서의 텍스트」를 기준으로 하여 「예루살렘의 성서」(BIBLE DE JERUSALEM)을 보조 「텍스트」로 채택 했으면 한다.
그리고 「꼬덱스」의 차이점을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명기해주기 바란다. 이런 점에서 메르크(A MERK)의 신약성서는 좋은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셋째로 역시 희랍원문의 대원칙에서 가능 한한 인명, 지명 등의 고유명사는 희랍발음을 공동으로 채택해야 될 줄 믿는다. 그리고 「헤브레아」어화된 희랍어는 「헤브레아」원 발음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종전의 사용되던 우리말 성서의 고유명사는 가톨릭, 프로테스탄트를 막론하고 너무나 산만하고 통일성이 없으며 구미각국어의 발음의 영향이 농후하여 마땅히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로, 번역될 우리말 문체의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하겠다. 물론 지금 쓰는 우리말은 계속적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최대한의 장래성을 띤 문체를 채택하고 국문학 전문가들의 고견을 기탄없이 받아들여야겠다. 필요에 따라서는 우리말의 새로운 낱말도 그 뜻을 잘 해득할 수 있다면 서슴치 말고 만들어 내야 될 줄 안다. 번역이라도 하면 고지식하게 이미 구시대에 통용되던 사전의 낱말풀이를 절대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결코 올바른 번역 태도라 할 수 없다. 사전의 가치를 전혀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원문의 뜻임을 잊지 말아야 겠다. 그러나 지나친 의역은 번역이 아니고 풀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요컨데 우리말과 원문의 일치를 최대 목표로 하여 지나친 의역을 삼가야겠고 또 사전에도 너무 얽매이지 말아야겠다.
실지로 번역사업을 착수하면 위에 열거한 문제점들은 해면에 뜬 빙산에 불과할 것이다. 전문위원들뿐 아니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직접간접으로 도와야겠다. 복음성서가 아집의 도구로 종파간의 쟁론에 악용되어서는 하느님의 참뜻을 모독하는 것이 되고 만다. 모든 그리스도 신자를 위해 모든 인류를 위해 생명의 말씀이 될 복음성가 함께 노력해서 올바르고 알아듣기 쉽게 번역되어 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사랑과 이해로 이 사업이 한 우리의 한 양떼가 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