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즘 우리 신자들 간에도 불신의 사조는 짙어만 간다. 신자와 신자끼리 못믿어 하는 불씨는 왜 자꾸 커져만 갈까? 2주일전 서울 구로동 본당 신자 한분이 석양에 찾아 오셨다. 60대의 노인으로 여비를 날치기 당해서 귀가할 여비 700원 때문에 차마 말못할 사정을 호소하시며 이발 기구를 담보로 하신단다. 7백원 때문에 3천원이 넘는 이발기구 를 담보로 잡혀야만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 지체들! 저녁 대접에 차를 타게 해드렸더니 2일 후 돈이 우송되어왔다. 단돈 7백원의 여비 때문에 두어시간의 대화와 담보물 조사 확인 등 작업이었어야 한다니 이 얼마나 서글픈 사회이냐? 그러나 난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2개월전 제주도의 신자가 (확실히 신자라고 했으니까) 여관에서 여비를 도난당했다기에 여비를 꾸어 주었으나 약속한 날자가 몇해 흘렀는데도 역시 『그 사람도 그랬군…』이었다.
인정 많으신 외국인 池 신부님도 한국신자들에 대해서 이젠 신임을 하지 않으려 하신다. 너무나도 보기 좋게 사기와 배신을 당하셨기 때문이리라. 8년 동안에 약속을 지킨 사람은 단 한사람이었다고…. 그것도 불완전한 채….
1주일전 춘천본당 신부님의 운전수였다는 30대의 교우가 저녁에 찾아왔다. 대전까지 가면 아는 사람이 있다면서 「개미마을의 마리아」란 책을 들고 반값이라도 사정하는 게 아닌가? 간단한 요기로 밤차를 타게 하며 차장에게 쥐어 줄 돈을 주면서 봉사정하고 여의치 않은 경우엔 도독차라도 불사할 수밖에 없다고 격려(?)하고 말았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어찌할 수없는 일이니 죄가 안된다고(?) 안심시켜 주기까지 하고서.
만일 그가 정말 신자라면 꾸어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스도 신비체의 형제들이란 대체 어디에 의의가 있겠는가? 회의심이 짙어간다. 도대체 우리의 신앙은 어디에 그 의의와 보람이 있을까? 영혼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구해야한다고 역설하시던 모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열심한 신자들에겐 본당신부님의 확인제도나 있었으면 어떨까? 신자로서의 자부심과 상호신임을 위해서… 그러면 또 가짜 확인증이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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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아구스띠노(전북 임실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