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직후 이 나라를 공산마수로 앗아가려는 左派의 흉계를 무찌르며 조국광복의 이념을 구현하려고 피땀을 흘린 투쟁사는 極에 이르렀고 바로 「氷炭不相容」이었다. 그리하여 懷柔란 용납될 수 없었고 중립주의는 회색분자로 설자리 마저 불허했다. ▲사랑을 하거나 무엇에 열중하면서 寸分의 여유를 주지않는 것이 인간 심리다. 失戀이나 成婚에 이르지 못했을 때 자살이 잦은 것도 그런 심리에서일 것이다. 신앙이 돈독하고 열심할수록 惡의 저주나 배타의식은 정비례해서 강해지나보다. 개인의 성품이 강할수록 타협을 용납하기 힘겹다. ▲천년 혹은 5백년이 지나서야 「이단자」란 이름을 「갈라져나간 형제」로 불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어렵고 지루한 解氷인가. 몇달전 성당을 「남의 교회」 지척에 세운다고 싸움이 벌어졌다. 몇일전에는 어떤 목사님이 폭설로 집을 잃은 서울 신림동공소 신자들을 위해 예배당에서 미사를 지낼 수 있도록 우정을 베풀었다. ▲최근 광주 대건신학대학서는 신학기 맞이 피정을 종래의 기도 · 묵상 · 반성 · 흔화에다가 개인문제 토론 · 현실적응 · 경험교환 등을 첨가하여 참가한 학생들로부터 「능동적 · 현실적」이었다는 만족한 소감을 들었다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젊은이단체들이 피정을 아예 「레크리에이션」으로 대치했더니 좋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젠 교회도 망할대로 망했다』고 개탄하는 소리도 들었다. ▲지난 1일 서울의 평신자사도직협의회 주최 「세미나」에서 주제발표자는 진보주의적 교회론 강의를 했는데 미사강론신부는 개혁주의를 개탄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서도 「진보 · 보수」 대결이 두드러져 가고 있다. ▲공의회 후 대화 · 쇄신 나아가서 현대적응작업을 시도하면서 교회내에 소위 보수 · 진보의 두 파가 생겼다. 禪的이며 봉쇄적 묵상피정의 장점이 「재즈」미사에 의해 배격될 수는 없는 것처럼 「재즈」미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子思의 중용론은 결코 기회주의적 회색주의를 가르치지는 않았다. 건설에는 파괴도 불가피하듯 「쇄신」을 위해 격렬한 대화는 필요하되 영원한 파괴나 고집 · 배타는 自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