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예로부터 인간에게 또 인간사회에 하나의 큰 문제를 남겨온 것이다. 노동없이 사람은 살 수 없고 인간사회는 발전할 수 없는 한편 사람은 또 노동하지 아니하고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노동을 될 수 있는한 멀리 하려고 힘쓰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노예에게 일을 시키고 노예제도는 사회적 신분을 뚜렷하게 차별지우면서 자유인들은 아무거리낌 없이 일부인간들을 인간이하로 격하시켜 노동의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도 경제적인 노예는 있어, 가난한 사람은 심한 노동을 해야하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기는 해야하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노동이 피땀을 요구하고 괴로움이 따르는 것이라 사람들은 원죄 이후의 인간이 가지는 숙명으로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혹은 운명이 가져다준 그 노동을 통해 천당에 갈 공로를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행히 직접 심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자유인은 노동에서 해방될 수 없는 가난한 노동자를 동정하고 형제애를 발휘하여 기계의 틈바퀴에서 쓸어지면 수용소에서 구제하는 것으로 만족하여 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너무도 쉽게 또 유치하게 생각하고 있지나 않는가. 노동문제를 사회 빈곤의 구제 문제로 자주 착각하고 있지나 않는가. 구제와 자선도 필요하거니와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을 주지 못하고 또 그것은 근본적인 노동문제를 그냥 두고 그 곁을 스쳐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노동문제는 노동이 무엇이냐에서부터 시작하여 노동 자체가 가지고 있고 또 노동이 요구하는 「메까니즘」의 검토와 시정이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레룸 노봐룸」 회칙 이후 그래도 교회는 우리에게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겨우 노동자를 동정하는 것으로 아직도 만족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긴 동정만 하고 앉아서 바라보다가 빵 하나 먼저주는 식은 벌써 옛날이야기다. 교회는 지금 노동의 의의를 높이 소리치며 노동자의 교도에 앞장을 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소리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세상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노동이 신성하다고 한다.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설교를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 말을 듣고 보람을 좀 더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에게만 노동의 참뜻을 가르치는 것은 아직 구시대의 이야기인 것이다. 벌써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은 인간의 특징이라고 하며 인간은 노동을 해야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각자가 맡은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는 것은 다 각자가 맡은바 일을 하는 성소에 의하기 때문이요 각자가 자기에게 적합한 일을 자유로히 하며 자기 인격완성을 이루는 것으로 공산주의를 능가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노동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발전이 평화의 다른 이름이라면 노동은 그 바탕이요 노동은 한마디로 말해서 구원의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만민 앞에 구원의 모습으로 들어나고 잇다면 구원된 천주의 백성은 노동을 어떻게 하는가라는 것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이 정말 우리를 완성할 수 있고 온 세상이 완성될 수 있는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으면 우리도 『인간의 지혜로운 노력과 창조된 자연물을 완성시키는 인간의 노동에 의하여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발전시키는 인간의 책임 · 의무』(제민족 발전에 대한 회칙 22)를 완수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노동운동은 이와같이 교회의 사명 자체를 위해 있는 것이다. 말만으로 부르짖던 진리를 생활로 실천해야 할 때인 것이다. 노동이 신선하고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교회는 누구보다도 정직하게 이루어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는데 앞장을 서야 하는 것이다. 자기자신과 타인의 노동을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로 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치 기준이 흐려지고 자의로 어긋나게 인정을 잘하는 현사회, 특별히 노동자의 세계에 질서를 위해서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교회가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조금도 잊거나 소홀하게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현세를 위한 교회의 사목인 것이다.
국가에서 제정한 노동절은 교회에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노동절을 만들고 노동의 참뜻을 알도록 하는 이런 일에 교회는 실로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할 때 그들의 희망과 어려움과 소망과 기쁨은 서로 교환되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같이 일하는 이들의 의지와 정신과 마음을 합하게 하고 그러는 가운데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서로 그들의 형제임을 깨닫게 될 것』(제민족발전 회칙 27)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이다.
10일의 「노동절」을 맞아 한국교회의 자세와 갈 길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