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전 춘천교구장이던 구 토마스 주교가 6·25 동란때 공산군에 잡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영웅적 사제직을 수행했고 포로교환으로 석방, 고국인 애란으로 송환됐다가 인간적으로는 진저리가 처질 한국 땅에 즉시 귀환했으며 6·25후의 한국교회 재건에 크게 이바지했고 이젠 삼척서 은퇴생활을 하면서도 또 불우한 한국인 구제에 여생을 바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도 춘천교구 주교좌인 죽림동성당 구내는 공산군에 학살당한 골롬바노회원인 순교자 신부의 무덤이 있다. 작년 10월 6일 우리는 이나라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한 빠리외방전교회 소속 주교와 신부들의 거룩한 신앙을 찬미하며 그들의 고귀한 신앙을 현양하는데 온갖 정성과 존경을 드렸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이같은 이국만리를 멀다않고 찾아와 평생을 바쳐 갖은 고난을 무릅쓰고 겨레에게 복음을 전파한, 국적을 초월한 수다한 유명 · 무명의 남녀선교사들의 피눈물나는 선교노력의 보람을, 그들이 바로 밑거름임을 생각할 때 인간적으로도 우리는 감사와 존경의 정을 결코 아끼지 않는 바이다.
선교사들의 이같은 고귀한 노력은 바로 복음정신에 바탕을 둔 것이며 최종 목표로 그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왕왕 선교사들이 그리스도 안의 한 형제이기보다 인종과 풍속 언어와 사고방식이 다른 이민족으로 느껴질 때가 있음을 솔직히 인정치 않을 수 없다.
그들은 혹은 원조를 주는 도도한 존재로 대해질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미개」니 「저개발」이니 하는 말마디로 조금 앞선 물질문명을 인생의 전부인양 하거나 교회마저 서구의 것인 것 같은 표양을 한다.
상술한 비선교사적 사고나 언행과 함께 최근 환속한 어떤 선교사 중에는 미사를 드리다가 제의를 벗고 『나는 결혼한다』고 공언한 몰지각하기 이를바 없는 행동을 한 일은, 또 『한국사람은 믿지 못한다』는 등 말은 얼마나 모멸적이며 전술한 존경할 선교정신이나 선교사들을 모독한 언사인가.
분명히 이런 결과에 이르게 된데는 한국인에게도 충분히 잘못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적 교사나 지도자, 더욱이 사제적 입장에서는 변명의 여지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회의 본질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또 최근 한국외방선교회가 발족하고 지원자 수가 많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칙적인 의미에서 이를 찬성한다. 그러나 들뜬 유학기분에 외국에라도 가고싶은 심정의 젊은이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보다 원칙적인 견지에서 한국에는 복음선포를 해야할 역군이 포화상태에 있단 말인가?성소자가 이땅에 많다는 이야기는 오늘도 그러한가? 벌써 금년부터 줄고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는 진정한 우정에서 우리의 심정을 말하고자 한다. 즉 한국교회는 「洋大人」을 원치않고 진정한 복음정신에 입각한 「선교사 형제」를 필요로 한다 또한 한국교회를 위해,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한국교회에 봉사할 「형제」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