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筆者는 珍客 한분을 만난 일이 있다. 여기서 「珍客」이란 진귀한 손님이라는 뜻이기 보다는 보기드문 손님이라는 의미로 쓴 말이다.
머리엔 서릿발이 성성하고, 얼굴은 줄음살이 깊다. 눈은 맑은지 침침한지 별로 인상에 남지 않았다. 후줄근한 옷에 「넥타이」가 첫눈에 촌스럽던 것이 생각난다. 筆者는 그분에 대한 先入感은 별로 없다. 다만 인상 그대로를 말하자니 이렇게 얘기가 시작된다.
神父가 환속(還俗)한 것이 뭐 대단한 흠이랄건 없다. 美國서는 「프리 프리스트」라는 말이 흔히 쓰이는 모양이다. 「前神父」랄까. 지난해 가을엔 美國의 週刊紙들이 「前神父」에 관한 特輯까지 했었다. 해마다 30명씩이 환속을 하고 있다던가?
敎皇聖下께서 결혼을 公式的으로 승락해준 이른바 帶妻神父는 이 地上에 지금 4쌍이 있다. 이분들은 他敎(주로 聖公會)의 結婚神父로서 改宗한 경우들이다.
敎皇께서는 그들의 말하자면 情狀을 참작해준 셈이다. 물론 이들은 本堂을 맞고 있거나 市敎一線엔 나타나 있지 않다.
學究에 여념이 없던가, 아니면 달리 의료사업이나 교육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私製의 結婚이 승락되어야 한다는 따위는 일단 「저널리즘」에선 興味꺼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司祭 자신들로서는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아무때나 司祭服을 벗으면 그만이다.
그것이 宗敎的인 罪라 할지라도 옷을 벗겠다고 결심(?)한 마당에 그런것을 가리는 자체가 우수꽝스럽다. 더욱이나 司祭의 結婚을 妥當視하려는 敎會의 一部 「리버랄리스트」(自由派)에겐 질시를 보낸다.
司祭이면서 帶妻를 하고 살림을 생각하고 저녁이면 수단을 벗어던지고 아기를 업어주며… 하는 일들은 상상도 하기 역겨운 이이다.
神父가 이른바 韓國의 이방전교시절처럼 神聖化된 경우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司祭도 누구나 다름없이 世俗化 될 수도 있다는 論理는 지나친 비약이다.
筆者는 그 珍客과 마주앉아 世上 사는 애기를 나누며 정신은 『神父의 結婚이란 요원한, 아니 상상도 못할 일이구나!』하는 생각에 골돌해 있었다.
崔鍾律(月刊 「中央」 編輯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