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는 바에 의하면 정부는 사회복지사업기금조달의 한 방책으로 「국민복권」 발행안을 놓고 그 구체적 방안을 연구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액 1백21억원 규모의 복권수입액을 앞으로 5년간에 걸쳐 자유판매로 연3회에 나누어 발행, 추첨에 의하여 몇개의 등급을 두고 매외 1등 당첨 1개를 두어 당첨자에게 5백만원을 타게한다는 것이 대체의 골자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 안이 보도되자 각계의 반발과 기우도 또한 의외로 강력했고 또 표면화 되어 첫째 국민의 사행심 조장, 근로와 건설의욕 상실, 둘째로 생활에 결제적 여유가 있는 부유층의 유휴 「포켙 머니」를 대상으로 해야 할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는 생활에 심한 타격 속에 방황하는 영세민들의 자학적인 호응밖에 얻지 못하리라는 점, 그리고 셋째로 다른 많은 나라에서 이미 실시하여 많은 성과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로 국민소득 1천 「달러」를 상회하는 나라와 우리나라처럼 겨우 1백 「달러」 남짓한 나라를 동일시 할 수 없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래서 입안자들은 이러한 반발을 감안하여 실시일자를 ①당초 4월에서 5월로 연기하고 ②사용목적을 주택자금으로 뚜렷하게 밝히고 ③대형기관을 주택은행으로 국한하여 ④당첨복권액을 5백만원에서 3백만원 선으로 내려놓는 등 여론에 따라 상당한 선까지 원안을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란은 이 복권방행에 대하여 정면으로 반대할 아무런 의사도 또 그러한 이유도 없다.
사회복지라는 뚜렷한 목적을 위하여 그 기금조달의 한 방안으로 복권을 발행해서라도, 비록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 되지 못하고 차선의 방법이요 부득이한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복지사회건설이라는 시급한 우리의 사명으로 미루어 볼 때 「개인에게는 방을 가족에게는 집」을 기어히 마련해 주어야 할 우리의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찬동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라 하겠다. 그러나 본란은 일반사회여론이 지극히 정당하고 사행심의 조장이라는 극히 당연한 염려를 입안자들은 추호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며, 구체안에 이점을 십분 반영시킬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가 형제애로써, 복권액에의 관심이 아니라 사회복지사업에의 참여라는 마음가짐에서, 복권을 산다는 마음이 아니라 좋은 사업에 소액이나마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희사」한다는 마음으로 응할 때 이 계획은 비로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본다. 문제는 참여하는 국민의 정신문제라고 하겠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복권발행의 대중화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권당 1백원에서 대중이 누구든지 응해볼 수 있도록 일 · 이십원정도로, 당첨복권의 상여액도 5백만원에서 대폭 낮추는 방향으로 다시 말하면 대중이 누구나 다 사업 목적에 찬동하여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계획면에 반영시키며 또 지도해야 될 줄로 안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 또 이 기회에 각 본당에서도 각종사업의 기금조달 방안을 한번 연구해 볼만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본당마다 심한 운영난과 재정적 고민 속에 골몰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터이다.
더구나 우리의 신앙이 애덕의 실천과 구현, 그리고 또 생활화 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또 한편 구호사업이나 다른 모든 복지사업은 교구본부나 수도단체에서만 하는 것이며 본당신자들은 관계없는 것으로 그릇된 인식을 하고 있으며 또 본당운영위원회가 조그마한 복지사업을 계획하고 싶어도 본당 자체의 운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물론 성의와 자금의 결핍이 그 원인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여하에 따라서는 또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반드시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 같다.
가령 본당내의 기업체나 상가에서 그 사업의 목적을 찬동하여 제품이나 상품을 한두개씩 희사하는 일은 쉽게 설득도 할 수 있는 일이요, 또 실행도 현금보다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각종대소의 현품이나 혹은 각 가정의 폐품이라 할지라도 본당에서 즉 신자들이 모아 이것을 신자들이 보기 쉬운 곳에 진열공람케 한뒤 이러한 물품을 현금으로 바꾸는 한 방법으로 복권발행을 한다면 우리는 사행심에 앞서 「희사」하는 정신으로 혹은 웃음어린 마음으로 이 「바자」에 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어진다.
사행심만을 염려하고 가만이 있으면 국가나 본당사업은 아무발전도 기대할 수 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위축일로를 걷게 마련이 아니겠는가 싶어진다.
복권발행이란 문제를 앞에 놓고 그 부정적인 면만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 적극적인 면에서 잘 이끌고 선도선용하면 반드시 비관만을 일삼고 있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방법으로라도 결과적으로 좀더 교회나 일반사회에 복지사업수행과 건설적인 사업추진에 관심과 활기를 기대할 수 있지 않는가 싶어지는 바이다. 복지 사업에 일반적으로 너무나 무관심한 것이 더욱 더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