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學生運動의 「이미지」
어느 사회에서나 학생은 젊은 지성의 상징이며 아직 속세의 때가 크게 묻지 않은 순전한 인간상으로 통해 왔다. 성숙과정에 있는 미완성 인간이면서도 그 사회의 미래상을 상징하며 넘쳐흐르는 정열과 정의감과 애국심에 불타는 새로운 동력으로 인식되어 왔다. 기성사회 속에서 자라고 배우면서도 항상 그 사회를 비판하고 쇄신해 나가려는 꿈을 찾아 쉴새없이 움직이는 이상인(理想人)으로 간주되어왔다.
이와 같은 경향은 안정되지 못한 사회일수록 강하고 후진사회·저개발국가일수록 두드러지게 늘어난다. 물론 안정되고 잘사는 사회에서도 젊은 지성의 물결이 약한 것은 아니나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여유 속에서 대체를 관상적 또는 사색적이며 개별적 또는 비조직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비록 어떤 우발적인 격동 속에서 조직화되고 실력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특성에 따르는 회귀선(回歸線)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기에 기성사회도 여유를 가지고 대하게 된다. 그러나 안정을 잃은 후진사회에서는 그 양상이 많이 다르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간에 역사의 윤리가 다르고 이해가 상반되는 긴박한 사정 속에서 여유없는 대결을 일삼게 된다.
따라서 학생운동의 「이미지」도 그 시대에 따라, 그 사회에 따라 서로 다르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10년전과 그 후의 「이미지」 사이에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조말(李朝末)의 개화운동이나 일제(日帝)하의 광복운동은 세대차에서 오는 운동이 아니었다고 본다. 그러나 4·19후의 학생운동은 젊은 지성의 적극적인 정치참여, 사회참여로 나타났으며 그 원동력은 바로 기성세대와 새세대간의 대결이었다. 그와 같은 경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점점 세대간의 긴장감을 더 짙게해 왔던 것이다. 그 결과 불행히도 오늘의 학생운동은 피차간에 어떤 대결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가톨릭學生運動
우리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도 가톨릭학생운동의 개념과 범주에 많은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가톨릭학생운동 국민으로서의 학생운동가운데 속해 있는 가톨릭신자인 학생단체의 운동으로 착각되어서는 매우 곤란하다. 가톨릭학생운동은 정치운동 아닌 복음화운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주체가 이 나라의 국민인 동시에에 신앙인이고 또 그 복음화의 대상이 역사적인 현실위에 놓여 있는 이상 서로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세대간을 대결시키는 것이 아니고 모든 하느님의 백성을 그리스도에게로 일치시키는 성사이다. 즉 그들의 복음화운동은 모든 인류가 사랑으로 서로 하나가 되고 하느님과 일치하게 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가톨릭운동은 모든 신앙인에게 주어진 운동이고 또 모든 인류를 그 대상으로 하는 초자연적인 사랑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 다만 그 운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위해 그 기능에 따라 분담한 결과로서 가톨릭학생들로 뭉쳐진 복음화운동단체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지난 6월 10일에는 전국가톨릭학생 지도신부회의에서 「전국학생문제연구위원회」를 설치하는 일에 관하여 검토 연구키로 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는 더욱 가톨릭학생운동의 바른 지도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국가톨릭학생연합회에서는 7월 28일부터 5일간 「학생운동이 가져야할 건전한 방향」이라는 주제 밑에서 ①세계학생운동의 일반적 성격 ②한국학생들에게 주어진 문제와 현 학생운동의 동향 ③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 등에 관한 「세미나」를 열게 되었다.
그 수확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모든 지도자들은 언제나 가톨릭학생운동의 영역이 우리 사회, 특히 학생사회의 복음화에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시켜 주어야하겠고 국민으로서의 학생운동과 혼선을 이루지 않도록 지도해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들의 복음활동과 사회참여는 언제나 협동적이어야 하고 봉사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주기 바란다.
■ 奉仕的 社會參與
가톨릭학생회나 그들의 여러 「액션그룹」에서는 방학 때마다 각 가지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모든 복음화운동은 그리스도와 같이 봉사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가톨릭학생들의 사회참여는 언제나 봉사활동에서 시작되고 끝맺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복음화운동은 어느 때보다 그 범위가 넓고 그 사회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대상이 간택된 하느님의 백성뿐 아니라 갈라진 형제, 이교도, 모든 외교인에게 미쳐야하고 개개인의 입교지도뿐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복음화에까지 미쳐야할 것이다. 따라서 봉사활동의 범위도 초자연적인 신앙에 국한됨이 없이 육체적인 삶의 지도에 시작되어야할 것이다. 젊은 지성의 성화된 정열은 능히 그들에게 맡겨진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