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俗說에 의하면 퇴계 이황 선생의 부인은 거의 천치에 가까울만큼 미거하고 無才한 女人이라고 한다. 이 부인에 대한 여러가지 우스운 일화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퇴계 선생이 떨어진 도포 고름을 부인에게 주면서 고쳐달라고 했더니 그 고름을 도포 앞섶 맨 밑자락에 붙여 놓았더란 것이다. 퇴계 선생, 하 어이가 없어서 『허허』 失笑를 했더니 이 부인 한다는 소리가 『조금만 좋으면 저래 웃어삿네. 저러고도 무슨 君子인고』하더란 것이다. ▲이런 부인을 퇴계 선생은 소박하지 않고 조강지처로 평생을 해로했다고 한다. 보통 위인들의 배후엔 흔히 어진 어머니나 아내의 내조가 있는 법인데 「海東의 朱子」라는 퇴계 선생에겐 이런 고질적인 부인이 있어 평생을 두고 그의 생활의 시련이 된 모양이다. 자을 잘못 감으면 일년 고질이요, 아내 잘못 얻으면 평생 고질이란 말도 있듯 이런 어리석은 배우자를 평생 반려로 하자면 작고 큰일간에 얼마나 고신극기가 필요했겠나만 좌우간 퇴계 선생은 일상의 가장 汎俗 일에서부터 이렇게 君子之道로써 人間에 대한 성실을 다했으며 그에게 있어 愚妻의 存在는 오히려 그 고매한 人格의 뒷받침이 됏지 人生에 손실을 가져온 것은 아닌 것이다. ▲이런 人生 모범은 서양의 성현 소크라테스와 그의 악처 크산티패와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니 극단적으로 말해서 소크라테스가 성자가 된 것은 그 악처 덕분이란 말조차 있다. ▲인생의 길엔 크고 작고 간에 어차피 장애와 고난이 있기 마련이다. 또 인간만이 이 고난을 通해 때때로 自我를 돌아보며 자기완성을 기하며 그 영혼은 더 깊은 곳에 이를 수 있고, 따라서 고난을 通해 오히려 기쁨을 얻는 능력을 갖고 있다. ▲성주간 동안 교회는 고난이 人間에 있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가르치며 그 실천 궁행을 권한다. 이 「메카닉」한 현실에서 지극히 小市民化된 現代人이 추구할 수 있는 美德은 옜 성인군자나 순교자적 장거를 의미하는게 아닐 것이다. 汎事에 감사하고 적은 일에 충성하라 했듯, 평소 늘 못마땅한 아내 더러는 다정한 말한마디, 돈 못버는 무능한 남편의 참담한 기분을 위로하기 위해서 살뜰한 써비스…이러이러한 미소한 봉사, 극기, 미덕에서부터 人間修業은 익어가고 人生은 고통에서나마 보람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