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5일 大學公論社 主催 外國人男女 한국어 웅변대회가 개최되었다. 책상을 맞대고 있는 S선생이 그 審査委員의 한분이어서 그날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날의 광경과 熱辯은 TBC 公開 「스튜디오」를 비롯해서 그밖의 방송 「메디아」를 통해 비교적 생생하게 구체적으로 알려졌다. 외국인들이 말하는 한국의 실태와 한국인의 생활을 보통 우리가 무관심하기 쉬운 문제들까지도 속속들이 파헤치는 것이었다.
폭소를 터뜨릴 「유모어」가 있었다.
사회의 현실에 대한 준렬한 비판이 있었다. 그 관찰의 섬세함이며 알기쉬운 表現이며 가슴을 찌르는 說得力은 그야말로 비상한 것이었다.
어떤 演士는 「빛좋은 개살구」라는 제목아래 『예를 들면 女子大學生이 알지도 못하는 어려운 책을 겉치레로 끼고 다니는 것, 없으면서도 있는체 하는 것,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체 하는 것들이 『빛좋은 개살구』라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주변에 『빛좋은 개살구』가 많은 것이다.
어떤 演士는 『猛犬注意』라는 제목에서 『어느날 한 家庭을 방문하였을때 문간에 猛犬注意라는 표지가 있어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나중에 그 집개를 보니 아주 귀엽고 아양을 떠는 「발바리」였다』고 말했다. 한국사람들의 허식과 허세를 풍자한 것이다.
어떤 演士는 『學生의 눈』이라는 제목에서 『미국의 학생들은 국민학교로부터 大壑으로 진학할수록 책가방이 무거워지는데 한국에서는 국민학교로부터 대학에 올라갈수록 책가방이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事物을 주관적으로 보는 것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판이하게 다른다.
事物을 깊이 직접 파고 들어가서 보는 것과 피상적으로 보는 것도 판이하게 다르다. 유달리 演士들의 말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순수하게 깊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연사들이 대부분은 神父님들이며 平和奉仕團員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社會의 밑바닥 사람들과 呼吸을 같이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와같은 생활을 하지 않았던들 그들의 웅변은 實感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한국에는 적지않은 外國人聖職者들이 와있다. 나의 聖堂에도 獨逸人神父님이 와계시다. 外國人聖職者의 강론과 가르침에 새로운 느낌이 든다. 그것을 더욱 순수하게 받아들여야만 할 겉 같다. 그들과 더욱 따뜻하고 다정한 사이가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또한 그들의 노고를 높이 평가해야만 할 것 같다.
梁興模 (中央日報 論設委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