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의 옛터를 발굴했을 때 남자들은 하늘을 향해 도전하거나 도망치려고 했거나 반항의 자세로 굳어 있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여자들은 몸을 꾸부러 수그리고 땅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예로들어 어떤 作家가 말하기를 대체로 여자들은 現實을 타개하기보다 현실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며 따라서 그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단념」이라고 했다. ▲여자가 혼이 生計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賣笑의 手段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賣笑行爲는 여성이 불가피한 현실에 직면했을 때 「단념」해야 할 여성의 마지막 밑천일런지 모른다.(그렇더라도 이것이 여성의 普遍的인 현상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賣笑는 여성의 최후의 수단이며 生計를 위한 가장 원시적인 방법일 것이다. 또한 이런 賣笑행위야말로 여성노예制의 온갖 형태의 요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전 某일간지에 「女大生 妓生」이란 이 시대에 있어서 특수한 신분의 女性群을 소개했다. 그들은 學資를 얻을 目的으로 자신의 미모와 學閥(?)을 밑천삼아 가장 손쉽고도 수입 높은 이 직업을 택한다고 한다. 과연 賣笑를 해서까지 지속할 學求熱이 그들에게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 또한 엄청난 현실적인 역설을 품고 있다. 학문 敎育의 目的은 人格·敎養·品位·人類福祉등 허다한 목적의식이 있겠지만 人間이 노예상태로 스스로 추락해서까지 이런 것을 自覺할 방법은 아무래도 없는 것이다. ▲東海의 한 浦口 巨津港에는 또한 새로운 身分의 女性群이 등장해서 화제. 남편을 바다에 잃고 직접 고기잡이에 나선 아낙네들 소위 漁夫아닌 漁婦들이다. 여자는 재수없다고 고깃배에 안태우는 수백년의 「타부」를 깨고 그네들은 어구차게 현실에 도전한다. 태산처럼 의지한 남편을 잃는 순간 그녀는 현실을 진작 「단념」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많은 고기를 싣고 돌아오는 갯가에서 기다리는 어린것들의 외침 『엄마야-!』 이 한마디 속에 그녀들의 온갖 보람과 生의 哀歡은 비롯되며 또한 끝난다. 정말 여인은 잘 「단념」하는 동물일까? 그러나 사랑의 보람이 있고 없음에 「단념」은 정반대로 발전한다. 즉 그것은 인내와 극기, 씩씩한 생활인, 아니면 자기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