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사람은 여러가지 재앙 속에서 살아왔다. 홍수, 한발, 지진, 전쟁, 병마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당하는 것 뿐아니라 한가족, 한개인이 겪는 것도 많다. 그러나 한편 인지(人智)의 발달에 따라 그 재앙을 예방하고 또는 그 피해는 적게 하는 새로운 방법들이 나오고 있다. 치산치수로 흡수를 막고저 수지와 지하수개발 인공강우 등으로 한발을 막고 예방주사 등으로 전염병의 만연을 막는 것 등이다.
그런데도 그중에는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길없는 재앙이 많이 있다. 그래서 문화국에서는 재앙을 막는데 최선을 다하는 한편 그 피해보상을 위한 사회적인 보장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이 가족의 행복과 관련되고 국민전체의 행복과 관계되는 것이기에 마땅히 국가는 그 복리의 증진이나 재앙의 회복을 사회적 유대관계 속에서 해결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있는 것이라면 그 땅에 태어난 모든 생명을 보호하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범죄자를 처벌하기 전에 그런 범죄를 예방하는데 최선을 다해야할 책임이 있고 이재민을 구호하기 전에 그런 재앙을 예방하거나 그 피해를 줄이는데 최선을 다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가에게 맡겨진 모든 권리는 그와 같은 국민을 위한 봉사에 필요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도 이룩되지 못하면 차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인간의 힘에 한도가 있는 것과 같이 국가의 힘에도 한도가 있다. 그러나 이재민이 노숙을 하고 아사를 해도 돌보지 아니하는 국가나 국민이 있다면 그들은 제책임을 잊고 있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을 함께하지 못하는 무리는 사회윤리를 거역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7·8월에 걸친 폭우로 많은 수재를 입었다.
중앙재해대책본부의 집계에 의하면 155명이 죽고 28명이 실종되고 126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재민의 수는 무려 43.576명에 달했고 재산피해는 63억4천3백만원이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는 그 구호를 위한 특별예산을 세우고 신문사는 의연금을 모집하는 등 그 구호에 많은 관심을 기울 이고 있다. 또한 거의 연례행사같이 되어 온 한해와 수해를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대책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안다. 특히 지하수개발에 의한 한해 대책은 성공적으로 진척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수해대책은 아직 부진한 것 같다. 산에 나무가 욱어져야 하겠고 하상(河床)이 낮아져야 하겠고 튼튼한 제방이 구축되어야 하겠고 방수로(防水路)가 터져야 하겠다. 특히 웅색하게 집거하고 있는 시가지의 수해는 해가 갈수록 심해져 가고 있다. 하수구가 메이고 축대가 무너지고 제방이 터져 물바다가 되는 등이다. 우리나라의 도시는 거의 모두가 배수를 위한 새로운 지하도시계획을 해야 할 형편에 놓여 있다. 최악시에는 시가지를 옮기는 한이 있더라도 이같이 많은 인명의 피해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재민의 구호는 국가만의 책임이 아니다. 모든 국민의 책임이고 모든 세계민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인은 그 구호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제물을 자기에게 바치지 말고 제 이웃에게 주라고 하셨다. 그것이 곧 자기에게 주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 이웃에게 하는 모든 일은 천상에서 백배 천배로 갚음을 받을 것이다.
오늘까지 우리나라의 이재민들은 외국교회와 구호단체로부터 많은 구호를 받아왔다. 특히 6·25동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 베풀어진 가톨릭교회의 제구호단체의 원조는 막대한 것이었고 그 은혜는 기리 기억되어야할 것이다. 우리가 그 은혜를 갚는 길은 우리도 불행한 제 이웃을 돕고 굶고 헐벗은 외국민을 돕는 일이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제 이웃을 사랑하고 그 불행을 돕는 것은 결코 자선이 아니다. 흔히 우리들 중에는 남을 도우면서도 본분아닌 자신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것이 자신이 될 수없는 것과 같이 제 이웃을 돕는 것도 자선이 될 수없는 것이다. 또한 제 이웃을 돕지 아니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지 아니하는 사람이기에 하느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이기에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제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 일과 우리의 신앙은 서로 분리될 수없는 하나인 것이다. 제 이웃에 대한 사랑이 곧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교회의 이재민구호활동에는 더욱 많은 반성과 각성이 있어야 하겠다. 어느 주교나 어느 단체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기에 우리나라 모든 교우들이 참가하는 일원적인 구호단체가 생겨야 하겠고 그 단체의 전문적 활동을 통하여 모든 교우가 제 이웃을 돕는데 공식적으로 참여케 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