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堂은 그 維持를 위하여 돈이 絶對 必要한 것이고 그 維持의 責任은 全的으로 敎友들에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敎友들중에는 간혹 聖堂維持에 意外로 認識이 부족한 분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敎務金이나 미사때의 禮物에서 인색한 모습이 눈에 띄니 말이다.
流行의 洋服을 입은 紳士敎友(?)가 미사때에 禮物을 걷우러 다녀보면 모르는양 시침을 떼던가 아니면 꼬기꼬기한 10원짜리를 바구니에 넣고도 泰然自若하니 때로 답답해진다. 묻노니 「커피」 한잔값도 못낸다는 말인가? 대포 한잔값도 아니내겠다는 것인가? 「신탄진」값도 아니쓴다는 말인가? 그야 山비탈의 판잣집 敎友라면 내지 않아도 좋지만 적어도 紳士敎友가 커피 한잔값도 아니낸대서야 이야기가 되질 않는다. 現代의 社會構造에서 聖堂이란 機關의 운영이 얼마라도 돈이 必要한 것임은 여기 擧論할 것도 없다. 내가 美國의 어느 聖堂에 다닐때 講論에서 神父님이 『멕시코의 XX를 돕기로 했다』 『어느 事業을 도와야 한다』고 하고 종이 봉지가 몇장씩 배부되는 것을 보았다. 10弗이라고 써넣으면, 영낙없이 바쳐야 한다. 敎友가 聖堂維持나 事業進行을 促進시키기 위해서 財政的 여유를 마련해야 하며, 自己 처지에 어울리게 誠意를 보여야, 우리 天主敎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랴. 新敎를 보면 내 오해인지는 몰라도 훨씬 교회 유지에 열성적인 것을 느꼈다. 집에 한 할머니가 단골집이라고 물건을 팔러온다.
그는 新敎에 다니는데, 물건값을 주면 두 주머니를 차고서, 한 주머니에 十分之一을 따로 넣는다. 하도 奇異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敎會에 바칠 돈이란다. 講論에 돈 이야기가 나온다고 不平해서는 아니된다. 우리는 現代의 社會構造위에선 聖堂을 認識하고서 個個의 聖堂뿐 아니라, 天主敎의 共同活動에까지 餘力이 생기도록 財政적 뒷받침을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各 聖堂도 그렇다. 神父님들은 主敎館에 그달 收入을 事實대로 보고하고 소정의 비율대로 바쳐야 한다.
혹시나 減額報告가 없는가 염려도 되는데 主敎館이 빈곤하면 무슨 큰 활동을 期待할 수 있으랴. 減額報告가 있다면 이것도 결코 아름다운 行爲는 못될 것이다.
다함께 反省해 볼 일이다.
李崇寧(文博 · 서울大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