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오로 6세는 지난 성주간 「베드로」 대성전에서 있었던 일반 알현시에 가톨릭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위험하고 파괴적이며 체계를 무시한 반란으로 가톨릭 교회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하고 이런 반란은 교회의 교리와 전통 및 그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 교황 자신이 성신의 보호로 세말까지는 속될 교회의 존망을 근본적으로 우려한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인류에게 그리스도와 복음을 전하며 지상의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고 행복된 평화를 이룩하는데 기여해야할 교회가 자체내의 부조리와 혼란으로 이를 오히려 저해한다면 큰 죄악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행위임을 지적하신 것이라 하겠다. 전체교회나 지역교회가 질서정연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단합되고 건설적 비판으로 밝은 희망을 주는 유기적 단체가 되어야겠는데 본연의 사명을 잊고 자주성과 자율성마저 잃어버린채 무분별한 시대사조에 휘말려 우왕좌왕하는 혼란을 초래하고 또한편으로는 고루한 아집에 사로잡혀 복음을 전할 대상을 도외시한채 교회의 직권을 어떤 권좌인양 초연하게 그리고 안일하게 노곤한 봄날의 졸음 속에 헤메고 있는 상태는 전자에 못지않게 통탄할 일이다. 교회의 전통과 권위에 대한 반발과 도전은 어느 시대에서나 어떤 사회에서든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심각하게 또 급박하게 표현된 적은 일찌기 없었다. 교회를 한국가의 지배계급과 피지배자의 관계처럼 생각하고 전통과 교도권을 백성을 구속하는 악습내지 악법으로 오인하여 축전된 피지배계급의 불만의 무분별한 폭발처럼 표현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허다한 역사적 이유가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구구히 역사적 원인을 캐내어 왈가왈부 하고저 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하느님의 모든 백성이 부활의 새 아침의 기쁨을 간칙한채 좀더 반성을 통한 자각을 해야할 시기임을 강조하고 싶다. 교회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각 지체의 총화인 하느님의 백성자체이며 현세의 여건으로 가견적 조직체와 불가견적 성진의 작용으로 항상 생명이 약동하는 한 생명체이지 어떤 법인단체는 아니다. 따라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각 지체의 독단적 작용은 허용될 수 없다. 교회에서 말하는 성직은 어떤 계급이나 권리이기에 앞서 왕다운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부여받은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교회조직의 근간은 사랑의 복음과 이를 뒤한 봉사 외에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교황은 스스로 자신을 「종의 종」이라고 부르며 교회의 최고 영예직인 추기경의 직책을 봉사(DIADONIA)라 하고 주교나 사제의 성성 서품시에는 교회(즉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봉사(SERVITIUM)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이 봉사직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전능으로 모든 성사와 교도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또한 존귀하며 이 봉사직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지 결코 백성이 부여한 것은 아니기에 마음대로 떼어버릴 수는 없다. 그리스도께서 사도의 발을 씻으셨다고 그리스도의 권위와 존귀함이 손색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고귀한 사제직이 너무나 손쉽게 비판되고 또한 그리스도 자신이 부여한 사제적 권위가 도전을 받고 있다 .물론 교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여러가지 분석 표현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제적 권위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제직을 받은 인간의 약점을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편도 있을 것이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약점을 정당화 하고 자신의 겨람을 엄폐하기 위한 도전도 없지 않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전자라면 비판을 받는 편이 응당히 반성과 아량을 가지고 시정해야 할 것이고 후자라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호히 고도되어야 할 것이다. 교도권이 봉사직이라고 무시한다면 이는 그리스도를 신봉하는 참다운 신자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평신자들의 헌신적 희생의 노력과 과감하고 격렬한 비판으로 개혁되고 혁신된 예는 허다하다. 그러나 교회가 위험한 혼란속에 처해있을때 이를 교도하고 질서의 안정으로 본연의 교회상을 이룩해야 할 일차적 의무와 책임은 봉사적 사제직을 받은 사목자에게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오늘날의 혼란의 중요원인중에 하나는 고루한 권위의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안일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데 있음을 묵과할 수는 없다. 교회의 참된 의미에서 사목자는 주교들뿐이다. 구라파 사회나 미국의 종교적 고민과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확실히 다르다. 우리의 현실과 다른 형태의 고민이 우리에게 감연되지 않고 참된 사랑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현실을 명확히 파악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지역적 교회의 논쟁이나 변천할 수 있는 전례개혁만이 사명의 전부는 아니다. 보다 시급한 것은 건전한 교도권의 확립과 이를 통한 유기적 사랑의 셩명체의 단합과 조화를 이룩하는데 있다. 확고부동한 교도권은 확고부동한 주교단의 단합과 동일하다. 한 나라의 주교회의는 모든 신자의 생활지침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모든 신자의 관심사이며 그만큼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인간적 약점과 인정에 좌우되는 허점과 또한 건전한 전통이 아닌 인습으로 시종된다면 그만큼 실망도 큰 것이다 영신적 사랑의 모체인 주교회의가 모든이에게 사랑이 훈기를 풀어주며 그리스도의 사제적 기도를 주교회의의 기도를 통해 들을 수 있도록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