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거북이 사줘』 일곱살짜리 아들놈 젭의 요구다.
『그래』 난 생각에 잠겨 귀담아 듣지도 않고 대답했다.
『엄마 나 진짜로 거북이가 갖고 싶단 말야』하고 꼬마는 졸라댔다.
『그래 그래』하고 나는 역시 애매한 대답을 했다. 그러다가 말겠지 하고 또 변덕이 생긴 거로구나. 나는 생각했다. 그 애는 전에도 개니 망아지니 닥치는 데로 사달라고 했었다. 코끼리 까지도 애의 요구사항에 끼여 있었다. 이젠 또 거북이다. 나는 그 요구사항에 대해 금방 잊어버렸다. 그 애도 그러길 바라면서…
그러나 아무 소용없었다. 어느날 나는 가게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가 파충류들이 들끓고 있는 수족관(水族館)에서 찾아냈다.
『저쪽에 있는 저거야』하고 그 애는 유리관 너머로 손가락질했다.
『오늘 말고…』라고 내가 말을 시작하자.
『나 돈 있단 말야』라고 말하면서 그는 뒷포켈에 손을 넣어 지갑을 꺼냈다.
제돈 가지고 거북이 값을 물겠다는 데야 나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제 돈을 내겠다는게 뭐 그리 대수로우냐고 하겠지만 스끄릇지와 같이 돈을 만지는데 쾌감을 느끼는 이 깍쟁이로서는 여간한 용단이 아니다.
그제 서야 나는 거북을 사겠다는 그 애의 말이 지나가는 변덕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앤 반짝반짝하는 노란통을 거북이 집으로 사고 「여틀」이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주고 식사 때마다 우리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식탁 중앙에다 갖다 놓았다. 때때로 거북일 잃어버려서 온 식구가 찾아 헤매다가 먼지가 뒤덮인 구석지에서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이 수색전도 곧 끝장이 왔다.
우리는 마침내 거북이를 식탁중앙으로부터 책꽂이 위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으로 추방하곤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젭만은 부지런히 먹이를 갖다주며 돌보았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생겼다. 여틀이 도무지 먹지를 않는다. 젭은 쥐구멍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와 같은 인내로 거북이를 지켜보았으나 한입도 먹으려 들지 않았다. 먹지도 않을뿐 아니라 움직이지도 않아서 어린 주인은 근심이 대단했다.
젭은 거북에 관한 책을 집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책에서 우리는 거북이란 동물은 귀가 없고 따라서 들을 수가 없으며 오래 동안 먹지 않아도 굶어죽는 법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항상 화씨 80도(섭씨 27도)의 상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젭은 여틀이 얼어 죽겠다고 하면서 어느날 통속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었는데 너무 뜨거워서 대단히 흥분을 하더니 뻣뻣해져 버렸다.
『거북이 국이나 끓여먹자』 남의 속도 모르고 한 아빠의 말이다.
『아 죽을 만큼 다치지는 않았어요』하며 젭이 울음을 터뜨렸다.
뻣뻣해진 거북이를 한번만 쳐다보면 이 불쌍한 거북이의 생명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게 됐다.
『거북이가 시원찮구나. 젭아. 자 너무 언잖아 하지마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또 한마리 사줄께』 그러나 젭의 파란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쳐다보고서야 앗차, 내가 말을 잘못했구나 하는 걸 느꼈다.
여름의 사건으로 해서 나는 어릴 때에 일어났던 일을 회상하게 됐다.
내 여동생들과 내가 어미 닭이 둥우리에 없는 새에 우리들이깐 병아리를 애완물로 가지고 놀 때다. 우리는 그 앙상한 갓깐병아리에게 경탄을 아끼지 않았고 그 병아리는 어디에나 우리 뒤를 졸졸따라 다녔다. 어느날 잘못하여 내가 그 병아리를 밟아버렸다. 나는 여러가지로 애를 다썼으나 끝내 살리지 못했다. 내가 그 불쌍한 것을 죽였다는 생각, 나는 지금도 그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젭이 잠든 후에 젭의 슬픔을 덜어줄려고 나는 여틀을 바깥에 내다놓기로 했다.
내가 여틀을 집어들자 뒷발하나가 움직이는 것을 알았다. 나는 여틀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면서 내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놈을 찬물속에 담그고 아침까지 기다렸다.
이튿날 그는 뒷발을 둘다 약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뜨거운 물에 데인 그의 머리는 온통 물집투성이였다.
이제 여틀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를 버릴 수는 없었다.
『오늘 아침엔 여틀이 어때? 좀 나았어? 살 수 있을까?』 젭이 그의 애물을 보기위해 부엌으로 뛰어들면서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물집투성이의 거북을 보고 젭도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한 듯했다.
『엄마, 거북이를 위해서 수의사를 부르면 안되나?』
『젭아, 수의사를 부르면 얼마나 비싸게 치이는지 아니? 여틀은 49센트 밖에 안돼. 수의사 한번 부르는 값이면 새거북 열두마리라도 살 수 있단다.』 나는 내말에 젭이 곤혹을 느끼는 걸 알아 차렸다.
『허지만 엄마, 난 열두마리 새거북은 싫어. 나는 여틀이 좋아. 여틀은 지금 치료해 줘야 해요』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 순간부터 우리는 여틀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물집이 생긴 여틀의 머리와 다리에 「라놀린」을 바르고 물을 자주 갈고 마침내 꼬리와 앞발을 움직일 때는 모두 응원을 하며 박수를 쳤다. 매일아침 우리는 모두 거북이 물통을 둘러싸고 밤새 무사한가를 살폈다.
어느날 아침 젭이 소리쳤다.
『엄마 빨리 와봐! 여틀 좀 봐. 한쪽 눈을 떴어.』
분명히 여름의 한쪽 눈의 물집이 꺼지고 사고가 난 이후 처음으로 우리들을 보고 한쪽 눈을 껌벅거렸다. 며칠 후에는 다른쪽 눈도 마져 떴다.
천천히 낫기 시작한 여틀은 마침내 헤엄도 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난 어느날 아침 우린 모두 잔뜩 흥분하여 여틀의 물통에 몰려들었다.
왜냐하면 여틀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기 때문에, 여틀을 여섯 달 동안 키웠는데 먹는 것을 본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하잘 것 없는 49센트짜리 거북이가 이젠 진짜 우리가족의 일원(一圓)이 되고 말았다.
나도 낮에는 여틀에게 이야길 지껄이면서 일을 하게 되었고 여틀이 음식을 먹는가 확인해 보게 됐다.
젭의 아빠까지도 이젠 집에 돌아오면 꼭꼭 여틀의 물통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오늘은 여름이 어떻게 지냈지?』하면서.
사고가 난지 6주만에 여틀은 완치됐다. 그동안 발톱이 하나밖에 남지 않고 모조리 빠졌지만 괜찮은 것 같았고 잘 지냈다.
젭은 거북이 껍질이 부드럽다고 말했지만 나는 계절 관계라 생각하고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느날 아침 나는 여틀의 물통을 씻으려고 그것을 들어내어 다른 통속에 넣었는데 여틀은 꼼짝도 안했다.
나는 여틀이 잠이 든 줄 알고 그대로 두었다. 그러나 한 시간 후에 나는 여틀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틀은 뜨거운 물에덴 상처를 가까스로 견뎌 이겨냈으나 거북이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인 연갑증(軟甲症)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나는 싸구려 거북한 한마리를 두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젭의 눈속에 고인 눈물이 보이는 듯했고
『엄마 여틀은 치료를 해줘야 해요.』하던 젭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젭이 집에 돌아오기 전에 여틀을 묻어 버릴까? 다른 여틀을 사다 놓을까? 젭은 알게 되겠지. 어떻게 하면 젭을 슬픔을 덜어 줄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젭의 눈물을 대신 흘려 줄 수는 없었다. 그의 슬픔을 함께 나누어 갖는 수밖에.
우리는 함께 여틀을 묻고 여틀을 잃은 슬픔을 함께 맛보게 될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또 다른 거북이를 키우게 되겠지.
P·A 엔게브렛트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