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에게 주어지는 呼稱이다.
「로마」字로는 EMINENTIA라고 하던가? 日刊新聞들이 「전하」라고 번역한 것은 근거가 어딘지 분명치 않다. 어쩌면 記者들이 바삐 서두는 경황 속에서 누가 편의상 그렇게 번역을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아뭏든 추기경을 모셔본 적이 없는 韓國敎會에서 그 「에미넌스」를 어떻게 번역할지는 궁금한 일이다.
日本에선 「예하」(猊下)라고 하는 모양이다. 사자가 앉는 자리를 「예좌」라고도 한다. 아니 예좌는 부처가 앉는 자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추기경에게 「사자」라는 「王位의 動物」字를 갖다 붙인 것은 그만큼 존칭이 되는 때문이다. 추기경은 사실 우리 敎會 안에선 敎皇 다음으로 높은 聖職者임엔 틀림없다. 따라서 마땅히 주어지는 고귀한 존칭을 우리는 마다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主敎 혹은 大主敎의 경우에도 公式席上에선 閣下라는 존칭을 써왔다. 그러나 「閣下」니 「전하」니 하는 말은 우리에게 별로 친금감이 없는 차거운 呼稱인 것도 사실이다. 친근감보다는 차라리 違和感이 가로 막는다.
高位聖職者들의 존칭을 갖게된 것은 中世敎政一致時代부터이다.
그때는 高位聖職者가 바로 執權者이기도 했기 때문에 敎會內의 權威보다는 政治的 意味의 權威로써 君臨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의 社會가 貴族과 平民으로 엄연히 분리되어 잇었던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때의 言語遺物을 지금 그대로 쓰고있다. 엄격히 생각하면 中世의 「유럽」的 傳統 위에서 이루어진 그런 樣式들이 우리에게 맞느냐는 문제는 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現代는 大衆의 時代이다.
敎會는 貴族의 엄호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大衆들 속에 있다. 모든 儀式은 大衆의 그것에 어울리게 고쳐져야 할 것이다. 敎會의 現代化란 建物이나 什器를 바꾼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늘의 時代와 함께 호흡함다는 意味일 것이다. 「전하」라는 존칭은 엄연히 大衆 속에 우뚝 서 계신 추기경을 멀리 떼어놓는 것이나 아닐지 근심스럽다. 좀 더 친근감 있고 敎友와 가까이 對話할 수 있는 「존칭」은 없겠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崔鍾律(月刊 「中央」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