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 중고등학교교감단은 지난주 문교당국에 대하여 현행 학군제와 중학평준화 실시에 따르는 문젯점과 특히 종교계 학교 설립목적과 그 창학정신을 말살케하는 모순점 등을 들고 7개항에 긍하는 그 이유를 소상하게 밝히면서 문교정책의 조속한 시정을 촉구하는 전의서를 제출했다.
이 건의는 지난 6월 27일 동회 제11차 연례총회에서 38개 가톨릭 중고교교장으로 구성된 교회학교 교육의 중진들이 모여 토의한 것을 그동안 검토 정리하여 금번 문교부에 제출한 것으로 중학무시험 진학, 학군제, 중등교 평준화정책 등을 반대한 것이 아니고 그 실시에 따르는 문젯점 특히 종교계 학교운영자의 눈으로 볼때 同案실시의 가장 큰 헛점으로 지적된 종교계 학교설립목적 말살을 시정하고 현문교정책을 보완하여 그 실효를 거두자는 것이라 하겠다.
만일 문교당국이 이 건의마저 묵살해버리고 기계적이며 책임회피적인 현행방안을 고집한다면 우리나라 사학의 발전과 특히 종교계학교는 그 존립의 의의를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현행대로의 제도하에서는 어떤 종교 단체도 막대한 노력을 들여 구태여 학교를 운영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그 노력과 경비를 다른 전교사업에 들려 종교단체 본래의 사업목적에 충당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일 금후로도 종교계학교의 특수성이 전연 고려될 수 없다면 종교단체에서 학교를 운영한다는 것은 종교학교의 설립목적 등은 처음부터 희생하여 정부의 교육재정의 부족을 보완해주는 일시적인 역할과 국민으로 하여금 특정된 「정신적인 유니폼」을 입히려는 그롯된 정책에 협력하는 시녀노릇 이외에 다른 아무의의도 없을 것으로 우리는 판단하는 바이다.
현행 제도에 가장큰 모순점은 학교선택의 자유가 박탈된 따라서 국민의 기본권리가 유린된 점이다. 학부형 특히 자기자녀의 종교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자녀의 신앙인으로서의 장래에 꿈을 싣고 희망을 걸어보는 부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실망이다. 「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녀를 교육하는 첫째이며 타(他)에 양도할 수없는 의무와 권리를 갖는 양친은 학교를 선택하는데 참다운 자유를 가져야 한다.
가령 가톨릭학교는 그 설립목적이 첫째, 그리고 우선 신자의 자녀를 가톨릭정신으로 교육하는데 있다. 따라 가톨릭학교에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교리를 가르치고 아동들의 생활을 「교우로서」 지도해야 한다. 부형들의 염원은 그 자녀들이 생활의 방도와 기술의 습득에 앞서 신앙생활에 충실하고 앞으로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사회복음화의 역군이 되어주기를 간구한다. 생활의 안정, 영달 따위는 다 2차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학교를 옆에 두고 지정된 학교, 종교와는 아무관련이 없는 일반공립 중학교에 「분배」 당한다든지 또는 가톨릭가정의 영세한 자녀가 그 부모의 의사와는 반대로 가령 불교학교에 통학을 해야한다든지로 강요당하는 현행 학구제 운영방안은 확실히 「인간」을 무시한 기계적이요 사무적인 미화만을 노리는 무책임한 사고방식이란 비난을 면치 못하리라.
우리는 금번 건의서에서 지적한 선선택(先選擇), 후추첨(後抽廠) 방식을 환영한다. 이 방식은 또한 문교부의 평준화정책을 살려 합리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는 방안로 확신하며 또한 종교교육을 희망하는 부형들의 선택의 권리를 보증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각각 특색이 있어야 한다. 평준화라고 해서 전국의 모든 중학교를 하나의 꼭 같은 불(型)로 만들어 한판에 밖은 꼭 같은 동형(同型) 국민을 만들자고 하는 사고방식은 위험한 사상이며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는 것이다.
학교선택은 비단종교계 학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모든 사학(私學) 그리고 국공립학교에 있어서까지도 그 교육이념이나 방법에 있어서 동일할 수는 없다.
교육자란 한 회사에서 만들어지는 제품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학교시설 기타 외형적인 평준화외에 교육자체의 평준화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또 있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계 학교뿐만 아니라 일반학교에서는 그 학군 안에서의 제1차 선택 혹은 제2차까지라도 인정하여 추첨에 응하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이 기회에 한가지 첨언하고 싶은 것은 종교학교의 교육내용에 있어서도 그 운영자는 과감하게 종교교육을 실시하여 주기를 우리는 희망한다. 종교계학교에서 일반학교를 표방하고 그 교시와 교훈에 그리고 교육방법에 있어서까지 교리를 반영시키거나 종교행사를 표현하지 않는 것을 미덕처럼 생각하는 소극적인 태도는 시정되어야 한다. 가령 명목만 종교계학교로 혹은 운영권만 종교단체에서 장악하고 있을 뿐 교장이나 교사 등 직접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교리도 그 정신도 모르는 일종의 기술전수자들로 구성되었다면 진실한 뜻에서 종교학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교육은 교사와 피교육자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